사회적관심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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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른 범죄행위의 위법성 조각 여부],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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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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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른 범죄행위의 위법성 조각 여부],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판시사항】
[1]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정권을 장악한 경우의 가벌성 여부(적극)
[2]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가 같은 법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된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하여도 적용되는지 여부(적극)
[3] 군형법상 반란죄의 의미 및 군의 지휘권 장악을 위하여 적법한 체포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행위가 반란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4] 반란의 모의 또는 공동실행의 의사에 대한 인정 방법
[5]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른 범죄행위의 위법성 조각 여부(소극)
[6] 반란에 수반하여 행한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및 불법진퇴가 반란죄에 흡수되는지 여부(적극)
[7] 반란을 구성하는 개별행위에 대한 반란 가담자의 책임 범위 및 죄수
[8] 형법 제91조 제2호 소정의 '국헌문란'의 의미
[9] 헌법 수호를 위하여 시위하는 국민의 결집이 국헌문란의 강압 대상인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및 형법 제91조가 예시적 규정인지 여부(소극)
[10]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폭동적 시위진압행위가 국헌문란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11]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의 판단 기준
[12]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의미와 정도 및 내란행위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의 폭동성 여부(적극)
[13] 간접정범의 방법에 의한 내란죄의 인정 여부(적극)
[14]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한정 적극)
[15] 내란을 구성하는 개별행위에 대한 내란 가담자의 책임 범위 및 죄수
[16] 내란죄와 내란목적살인죄의 관계
[17] 내란죄의 기수시기 및 내란죄가 상태범인지 여부(적극)
[18] 5·18내란행위의 종료 시점(1981. 1. 24.)
[19] 5·18내란 과정에서 대통령의 재가, 승인 또는 묵인 하에 이루어진 병력의 배치·이동이 반란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20] 제3자 뇌물수수의 경우 그 제3자로부터 뇌물을 건네받지 않은 공무원으로부터 뇌물의 가액을 추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1] [다수의견] 우리 나라는 제헌헌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등을 국가의 근본이념 및 기본원리로 하는 헌법질서를 수립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친 헌법개정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위 헌법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여 오고 있는 터이므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폭력으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우리 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그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반대의견]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에 의하여 정권을 장악한 후 이를 토대로 헌법상 통치체제의 권력구조를 변혁하고 대통령, 국회 등 통치권의 중추인 국가기관을 새로 구성하거나 선출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이 국민투표를 거쳐 이루어지고 그 개정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고 국회가 새로 구성되는 등 통치권의 담당자가 교체되었다면, 그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는 국가의 헌정질서의 변혁을 가져온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할 것인바, 그와 같이 헌정질서 변혁의 기초가 된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또는 그 정치적 행위가 사후에 정당화되었는지 여부의 문제는 국가사회 내에서 정치적 과정을 거쳐 해결되어야 할 정치적·도덕적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그 본래의 성격상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법원이 사법적으로 심사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이고,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따라서 그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가 비록 형식적으로는 범죄를 구성한다고 할지라도 그 책임 문제는 국가사회의 평화와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움직이는 국민의 정치적 통합과정을 통하여 해결되어야 하는 고도의 정치문제로서, 이에 대하여는 이미 이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여러 번에 걸친 국민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형성되어 온 마당에 이제 와서 법원이 새삼 사법심사의 일환으로 그 죄책 여부를 가리기에는 적합하지 아니한 문제라 할 것이므로, 법원으로서는 이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
[2] [다수의견]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는 그 제1항에서 그 적용대상을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라고 특정하고 있으므로, 그에 해당하는 범죄는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의 시행 당시 이미 형사소송법 제249조에 의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그 적용대상이 됨이 명백하다고 할 것인데, 위 법률 조항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1996. 2. 16. 선고 96헌가2, 96헌마7, 13 사건에서 위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합헌결정을 하였으므로, 위 법률 조항의 적용범위에 속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
[반대의견1]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 적용대상으로 삼는 헌정질서파괴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공익의 중대성과 그 범죄혐의자들에 대하여 보호해야 할 법적 이익을 교량할 때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는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한 다음에 소급적으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이른바 진정소급효를 갖는 법률규정은 형사소추권이 소멸함으로써 이미 법적·사회적 안정성을 부여받아 국가의 형벌권 행사로부터 자유로워진 범죄혐의자에 대하여 실체적인 죄형의 규정을 소급적으로 신설하여 처벌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공소시효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 다시 소추할 수 있도록 공소시효를 소급하여 정지하는 내용의 법률은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따라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는 그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하지 않은 범죄에 대하여만 한정하여 적용되고,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에 대하여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또한 법원은 헌법재판소의 1996. 2. 16. 선고 96헌가2, 96헌가7, 13 결정에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도 위 법률 조항이 합헌이라고 한 결정 이유 중의 판단내용에 기속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합헌으로 선고된 법률조항의 의미·내용과 적용범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정하는 권한 곧 법령의 해석·적용의 권한은 바로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며, 법원이 어떠한 법률 조항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한 가지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고 다른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합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위헌적인 해석을 피하고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방법을 택하여야 하는 것임은 또 하나의 헌법수호기관인 법원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한 만큼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에 불구하고 위 법률 조항을 위와 같이 해석·적용함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반대의견2] 법원은 법률의 내용이 헌법에 위반되더라도 곧바로 그 적용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 헌법 제107조 제1항에 의하여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하여야 하는바, 이 경우 헌법재판소의 결정 중 각종 위헌결정은 헌법재판소법 제47조에 의하여 법원을 기속하게 되나, 합헌결정은 그 법률을 재판에 적용할 수 있다는 효력이 있을 뿐이므로, 그 법률을 적용함에 있어서 합헌적으로 해석할 책무는 여전히 법원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은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가 합헌이라는 것인 만큼 법원에게는 그 법률 조항을 합헌적으로 해석할 의무가 여전히 있는 것이고, 공소시효에 관한 위 법률 조항은 [반대의견1]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만 적용된다고 해석함이 합헌적이다.
[3] 군형법상 반란죄는 다수의 군인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국권에 반항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국권에는 군의 통수권 및 지휘권도 포함된다고 할 것인바, 반란 가담자들이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 없이 적법한 체포절차도 밟지 아니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행위는 육군참모총장 개인에 대한 불법체포행위라는 의미를 넘어 대통령의 군통수권 및 육군참모총장의 군지휘권에 반항한 행위라고 할 것이며, 반란 가담자들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위와 같은 행위를 한 이상 이는 반란에 해당한다.
[4] 반란죄를 범한 다수인의 공동실행의 의사나 그 중 모의참여자의 모의에 대한 판시는 그 공동실행의 의사나 모의의 구체적인 일시·장소·내용 등을 상세하게 판시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공동실행의 의사나 모의가 성립된 것이 밝혀지는 정도면 족하다.
[5] 상관의 적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른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것이나,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부하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
[6] [다수의견] 반란의 진행과정에서 그에 수반하여 일어난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및 불법진퇴는 반란 자체를 실행하는 전형적인 행위라고 인정되므로, 반란죄에 흡수되어 별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
[반대의견] 일반적으로 법조경합 중 흡수관계의 한 형태로 보고 있는 전형적 또는 불가벌적 수반행위라고 함은, 행위자가 특정한 죄를 범하면 비록 논리 필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전형적으로 다른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이 때 그 구성요건의 불법이나 책임의 내용이 주된 범죄에 비하여 경미하기 때문에 처벌이 별도로 고려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바, 전형적 수반행위가 주된 범죄에 흡수된다는 법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전형적 수반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래 가벌적인 행위의 불법 및 책임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고, 수반행위가 주된 범죄에 흡수된다고 보려면 적어도 수반행위의 불법이나 책임의 내용을 주된 범죄의 그것에 함께 포함시켜 평가하여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수반행위의 반가치를 별도로 평가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에 한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지휘관의 불법진퇴행위나 계엄지역수소이탈행위는 반란죄에 일반적·전형적으로 수반되는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불법이나 책임 내용을 반란죄에 흡수하여 평가할 수 없는 고유하고도 중대한 반가치가 있는 범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반란죄에 흡수된다고 볼 수는 없고 각각 별도의 죄가 성립한다.
[7] 반란죄는 다수의 군인이 작당하여 넓은 의미의 폭행·협박으로 국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벌어질 수 있는 살인, 약탈, 파괴, 방화, 공무집행방해 등 각종의 범죄행위를, 반란에 가담한 자들이 개별적으로 인식 또는 용인하였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의 반란행위로 묶어 함께 처벌하는 데에 그 특질이 있는 집단적 범죄이므로, 반란에 가담한 자는 그에게 반란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과 공동실행의 의사만 있으면 반란을 구성하는 개개의 행위인 살인, 약탈, 파괴 등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지시하거나 용인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살인 등 반란을 구성하고 있는 행위의 전부에 대하여 반란죄의 정범으로서 책임을 진다. 한편 반란에 가담한 자 중에서 반란을 구성하고 있는 특정의 살인행위를 직접 실행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살인행위를 개별적으로 지시하거나 용인하는 등 공동실행의 의사가 있는 자는 그 살인행위에 대하여 반란죄와는 별도로 살인죄의 책임도 져야 할 것이나, 그 살인행위에 대한 공동실행의 의사가 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살인행위에 대하여 반란죄의 책임 이외에 별도로 살인죄의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8] 형법 제91조 제2호에 의하면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의 목적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그 기관을 제도적으로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상당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9] 헌법상 아무런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만으로 헌법수호를 목적으로 집단을 이룬 시위국민들을 가리켜 형법 제91조 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고 있는 규정이라고 볼 수도 없다.
[10] 5·18내란 행위자들이 1980. 5. 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난폭하게 진압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보다 강한 위협을 가하여 그들을 외포하게 하였다면, 그 시위진압행위는 내란행위자들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11]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위와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12]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 또는 협박은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를 의미하는 최광의의 폭행·협박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를 준비하거나 보조하는 행위를 전체적으로 파악한 개념이며, 그 정도가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음을 요한다.
그런데 1980. 5. 17.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 등 관계 법령에 의하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게 되므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고, 민간인인 국방부장관은 지역계엄실시와 관련하여 계엄사령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지휘감독권을 잃게 되므로, 군부를 대표하는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됨은 물론 국방부장관이 계엄업무로부터 배제됨으로 말미암아 계엄업무와 일반국정을 조정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마저도 배제됨으로써,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받는 강압의 효과와 그에 부수하여 다른 국가기관의 구성원이 받는 강압의 정도가 증대된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의 그와 같은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하고, 또한 그 당시 그와 같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우리 나라 전국의 평온을 해하는 정도에 이르렀음을 인정할 수 있다.
[13] 범죄는 '어느 행위로 인하여 처벌되지 아니하는 자'를 이용하여서도 이를 실행할 수 있으므로, 내란죄의 경우에도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가 그러한 목적이 없는 자를 이용하여 이를 실행할 수 있다.
[14]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
[15] 내란 가담자들이 하나의 내란을 구성하는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이를 모의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란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전체로서의 내란에 포함되는 개개 행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라도 그 모의에 참여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기여하였음이 인정된다면, 그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내란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고, 한편 내란죄는 그 구성요건의 의미 내용 그 자체가 목적에 의하여 결합된 다수의 폭동을 예상하고 있는 범죄라고 할 것이므로, 내란행위자들에 의하여 애초에 계획된 국헌문란의 목적을 위하여 행하여진 일련의 폭동행위는 단일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단순일죄로 보아야 한다.
[16] 내란목적살인죄는 국헌을 문란할 목적을 가지고 직접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살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 할 것이므로,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내란죄가 '폭동'을 그 수단으로 함에 비하여 내란목적살인죄는 '살인'을 그 수단으로 하는 점에서 두 죄는 엄격히 구별된다. 따라서 내란의 실행과정에서 폭동행위에 수반하여 개별적으로 발생한 살인행위는 내란행위의 한 구성요소를 이루는 것이므로 내란행위에 흡수되어 내란목적살인의 별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나, 특정인 또는 일정한 범위 내의 한정된 집단에 대한 살해가 내란의 와중에 폭동에 수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의도적으로 실행된 경우에는 이러한 살인행위는 내란에 흡수될 수 없고 내란목적살인의 별죄를 구성한다.
[17]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로서, 다수인이 결합하여 위와 같은 목적으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행위를 하면 기수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해석되므로, 다수인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을 하였을 때 이미 내란의 구성요건은 완전히 충족된다고 할 것이어서 상태범으로 봄이 상당하다.
[18] 5·18내란 과정으로서의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일종의 협박행위로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에 해당하므로, 그 비상계엄 자체가 해제되지 아니하는 한 전국계엄에서 지역계엄으로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그 최초의 협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어서 그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는 이를 해제할 때까지 간단없이 계속되었다 할 것이고, 이와 같은 폭동행위가 간단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전후하여 그 비상계엄의 해제시까지 사이에 밀접하게 행하여진 이른바 예비검속에서부터 정치활동 규제조치에 이르는 일련의 폭동행위들은 위와 같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를 유지 또는 강화하기 위하여 취하여진 조치들로서 위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와 함께 단일한 내란행위를 이룬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위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포함한 일련의 내란행위는 위 비상계엄이 해제된 1981. 1. 24.에 비로소 종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19] [다수의견] 군형법상 반란죄는 군인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군 지휘계통이나 국가기관에 반항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고, 군 지휘계통에 대한 반란은 위로는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최말단의 군인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연결되어 기능하여야 하는 군의 지휘통수계통에서 군의 일부가 이탈하여 지휘통수권에 반항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할 것이므로, 5·18내란 과정에서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 하에 내란행위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병력의 배치·이동은 군형법상의 반란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반대의견] 5·18내란 과정에서의 내란행위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병력의 배치·이동행위가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는 반란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이지만, 여기의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은 대통령이 정상적인 국정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하는 것이지 대통령 자신이 내란행위를 한 자들에 의하여 정상적인 권능행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내려진 것을 최고통수권자의 승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란행위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병력의 배치·이동 등 일련의 행위가 단일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에게 가해진 강압상태는 위에서 본 내란행위 종료시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그 일련의 폭동과정에서 일부 병력의 배치·이동 등에 대하여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란행위자들의 내란행위에 의하여 대통령이 적정한 권능행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적법한 승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다수의견과 같이 위 일련의 폭동과정에서 일부 병력의 배치·이동 등이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이라고 보게 되면, 대통령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 자신을 강압·외포하여 폭동하려는 내란행위자들에 대하여 그러한 무력행사를 재가 또는 승인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였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되므로, 대통령마저도 피고인들과 공모하여 내란죄를 저지른 것이라면 모르되, 오로지 내란행위자들에 의하여 대통령의 적법한 권능행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내란죄로 인정하면서도 반란죄에 관한 한 내란행위자들의 일부 병력의 배치·이동 등 행위에 대통령의 적법한 재가 또는 승인이 있었다고 한 다수의견은 납득하기 어렵다.
[20] 형법 제134조에 의하면, 범인 또는 정을 아는 제3자가 받은 뇌물은 필요적으로 몰수·추징하도록 되어 있는바, 그 규정취지가 범인 또는 정을 아는 제3자로 하여금 불법한 이득을 보유시키지 아니하려는 데에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범인이라 하더라도 불법한 이득을 보유하지 아니한 자라면 그로부터 뇌물을 몰수·추징할 수 없으므로, 제3자 뇌물수수의 경우에는 범인인 공무원이 제3자로부터 그 뇌물을 건네받아 보유한 때를 제외하고는 그 공무원으로부터 뇌물의 가액을 추징할 수 없다.
【참조조문】
[1] 형법 제87조, 군형법 제5조
[2]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 형사소송법 제249조
[3] 군형법 제5조
[4] 군형법 제5조
[5] 형법 제20조
[6] 군형법 제5조, 제20조, 제27조, 형법 제37조
[7] 군형법 제5조, 형법 제37조
[8] 형법 제91조
[9] 형법 제91조
[10] 형법 제91조
[11] 형법 제91조
[12] 형법 제87조
[13] 형법 34조, 제87조
[14] 헌법 제101조, 계엄법 제2조
[15] 형법 제37조, 제87조
[16] 형법 제37조, 제87조, 제88조
[17] 형법 제87조
[18] 형법 제87조
[19] 군형법 제5조
[20] 형법 제130조, 제134조
【참조판례】
[2] 대법원 1992. 5. 8.자 91부8 결정(공1992, 2151), 대법원 1996. 4. 9. 선고 95누11405 판결(공1996상, 1442) /[5][12][17] 대법원 1980. 5. 20. 선고 80도306 전원합의체 판결(전원합의체판례집 형Ⅱ, 49) /[5] 대법원 1988. 2. 23. 선고 87도2358 판결(공1988, 623) /[14] 대법원 1964. 7. 21.자 64초3 재정(집12-2, 형2), 대법원 1979. 12. 7.자 79초70 재정(공1980, 12379), 대법원 1980. 8. 26. 선고 80도1278 판결(공1980, 13136), 대법원 1981. 4. 28. 선고 81도874 판결(공1981, 13930), 대법원 1982. 9. 14. 선고 82도1847 판결(공1982, 1034)
【전문】
【피고인】
A 외 16인
【상고인】
피고인들 및 검사
【변호인】
변호사 B 외 15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1996. 12. 16. 선고 96노1892 판결
【주문】
피고인 C, D, E, F, G, H, I, J, K, L, M, N의 각 상고와 검사의 피고인 A, O, C, D, P, G, H, I, L, M, N에 대한 각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피고인 E, F의 상고 후 구금일수 중 100일씩을 각 본형에 산입한다. 피고인 Q에 대한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한다.
【이유】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피고인 C의 변호인 R의 보충상고이유는 위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 및 검사의 상고이유를 아래와 같은 순서로 나누어 항목별로 판단한다.
아 래
제1장 이른바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등 사건에 공통된 부분
1.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의 처벌 문제
2.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 등
가. 5·18특별법 제2조의 위헌 여부 및 공소시효완성 여부
나. 헌법재판소 1996. 2. 16. 선고 96헌가2, 96헌마7,13 결정의 무효 여부
3. 공소권 남용 여부
제2장 이른바 12·12 군사반란 사건 부분
1. 피고인 C, D, E, F, G, H, I, J, K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S 육군참모총장 체포의 불법성
나. 대통령에 대한 강압
다. 병력동원의 불법성
라. 지휘부의 설치·운영
마. 반란의 모의 등
바. 명령복종행위의 위법성 및 책임성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및 불법진퇴의 점
나. 초병살해, 상관살해미수, 살인의 점
다. 피고인 P의 반란의 점
제3장 이른바 5·18 내란 등 사건 부분
1. 피고인 C, D, G, H, I, L, M, N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국헌문란의 목적
나. 폭동성
다. 내란의 모의와 실행행위 가담
라. 내란목적살인
마. 내란죄의 종료시기
바. 군사반란
사. 위법성조각사유 등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광주교도소의 방어 부분과 관련한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의 점
나. 자위권발동과 관련한 내란목적살인의 점
다. 반란의 점
라. 불법진퇴의 점
제4장 뇌물 사건 부분
1. 피고인 N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인 A
나. 피고인 O
제5장 피고인 Q 부분
제6장 결 론
제7장 소수의견
1.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는 대법관 박만호의 반대의견
2. 5·18특별법의 위헌 여부와 공소시효완성 여부에 관한 대법관 박만호, 대법관 박준서, 대법관 신성택의 반대의견
3. 피고인 P에 대한 판단 부분에 관한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지창권,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 대법관 송진훈의 반대의견
4. 대법관 이용훈의 반대의견
가. 지휘관수소이탈·불법진퇴의 반란죄 흡수 여부에 관하여
나. 5·18 관련 반란죄 중 무죄 부분에 관하여
제1장 이른바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 등 사건에 공통된 부분
1.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의 가벌성에 관한 피고인 C, D, E, F, G, H, I, J, K,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위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이 사건 피고인 A 등에 대한 공소사실이 반란과 내란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그러한 반란과 내란의 과정을 거쳐 확고히 정권을 장악하고 헌법개정절차 등을 통하여 구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니 피고인들의 행위를 새로운 법질서 아래에서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각건대, 우리 나라는 제헌헌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등을 국가의 근본이념 및 기본원리로 하는 헌법질서를 수립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친 헌법개정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위 헌법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여 오고 있는 터이므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과 같이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폭력으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고인들이 그 내세우는 바와 같이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하였음을 전제로 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피고인 A 등이 이 사건 내란을 통하여 정권을 장악한 다음 헌법을 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피고인 A가 대통령에 선출되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행하였고, 다시 그 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을 개정하고 그 개정된 헌법(현행 헌법)에 따라 피고인 O가 대통령에 선출되어 그 임기를 마치는 등 그 동안에 있었던 일련의 사실에 비추어 마치 피고인들이 새로운 법질서를 형성하였고 나아가 피고인들의 기왕의 행위에 대하여 이를 처벌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처럼 보일 여지가 없지 아니하나, 국회는 헌정질서파괴범죄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상의 공소시효의 적용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이하 '헌정질서파괴범죄특례법'이라 한다)과 바로 그 헌정질서파괴범죄에 해당하는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를 단죄하기 위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하 '5·18특별법'이라고 한다)을 제정하였으며, 헌법재판소는 5·18특별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함으로써, 피고인들이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헌법개정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행위를 불문에 붙이기로 하는 어떠한 명시적인 합의도 이루어진 바가 없었으므로, 특별법이 제정되고 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이 내려진 이상, 피고인들은 그들의 정권장악에도 불구하고, 결코 새로운 법질서의 수립이라는 이유나 국민의 합의를 내세워 그 형사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한 원심판결의 이유설시에 적절하지 아니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행위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또는 이유모순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박만호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1. 참조).
2. 공소시효의 완성 등
가. 5·18특별법 제2조가 위헌이므로 적용되어서는 아니되고,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인 C, D, G, H, I,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5·18특별법 제2조는 그 제1항에서 그 적용대상을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특례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라고 특정하고 있으므로, 그에 해당하는 범죄는 위 법률 조항의 시행 당시 이미 형사소송법 제249조에 의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그 적용대상이 됨이 명백하다고 할 것인데, 위 법률 조항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1996. 2. 16. 선고 96헌가2, 96헌마7, 13 사건에서 위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합헌결정을 하였으므로, 위 법률 조항의 적용범위에 속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 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위 피고인들에 대하여 공소가 제기된 군사반란에 관한 범죄, 내란에 관한 범죄 및 내란목적살인죄(이하 '이 사건 헌정질서파괴범죄'라 한다)는 1979. 12. 12.과 1980. 5. 18.을 전후하여 발생하였고, 이들은 헌정질서파괴범죄특례법 제2조에서 헌정질서파괴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2편 제1장 내란의 죄 또는 군형법 제2편 제1장 반란의 죄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5·18특별법 제2조의 적용범위에 속하는 범죄임이 명백하므로, 이에 대하여는 위 법률 조항을 그 시행 당시 이미 형사소송법 제249조에 의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한편 5·18특별법 제2조는 그 적용범위에 속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1993. 2. 24.까지 그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헌정질서파괴범죄에 대하여는 1993. 2. 25.부터 그 공소시효가 진행한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 헌정질서파괴범죄는 모두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1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그 공소시효의 기간이 15년이고, 그 중 이른바 12·12군사반란에 관련된 부분의 공소는 1996. 2. 28.에, 이른바 5·18내란에 관련된 부분의 공소는 1996. 1. 23.과 1996. 2. 7.에 각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분명하므로, 모두 그 공소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공소가 제기되었음이 역수상 명백하다.
이 점에 관한 원심판결의 이유설시 중 위 피고인들의 내란에 관한 범죄의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에 대한 판단 부분에 적절하지 아니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하였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고, 위 피고인들의 나머지 범죄의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에 대한 판단 부분은 위에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며,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박만호, 대법관 박준서, 대법관 신성택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2. 참조).
나. 헌법재판소 1996. 2. 16. 선고 96헌가2, 96헌마7, 13 결정이 무효라는 피고인 C, G, H의 변호인 T의 주장에 대하여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5·18특별법 제2조의 적용범위에 속하는 범죄인 이른바 공직자 숙정 등의 조치에 관여하였던 사람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서 위 법률 조항에 대하여 합헌이라고 한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관여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24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제척원인에 해당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만으로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당연무효로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이 사건 공소제기가 공소권 남용이라는 피고인 C, G, H의 변호인 T의 주장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면, 검사가 최초에 이 사건 군사반란과 내란 사건에 대하여 불기소결정을 하였다가, 그 후 위 피고인들에 대한 새로운 범죄혐의가 나타나거나 또는 국회에서 이 사건과 관련하여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으로 사정이 변경되자, 수사를 재기하여 그 수사 결과에 터잡아 이 사건 공소를 제기하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검사의 위와 같은 공소제기가 공소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공소권 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제2장 이른바 12·12군사반란 등 사건 부분
1. 피고인 C, D, E, F, G, H, I, J, K(이하 1.항에서는 '피고인들'이라고 한다)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S 육군참모총장 체포의 불법성
(1) S 육군참모총장의 체포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의 직무상 행위로서 적법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내세운 증거에 의하여 1979. 12. 12.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피고인 H가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 겸 위 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이던 피고인 A의 지시에 따라 위 합동수사본부 수사 제2국장 U 등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같은 날 18:50경 무장한 제33헌병대 병력을 육군참모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하고 같은 날 19:10경 위 공관으로 들어가서 총으로 위협하는 가운데 육군참모총장 육군대장 S를 강제로 끌고 나와 같은 날 19:30경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한 사실, 위 피고인들이 S 총장을 체포할 당시 그에 대한 강제수사가 필요하지도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체포 목적이 그의 범죄를 수사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지지 내지 동조하는 세력을 규합·확산하고 그에 대한 반대세력을 약화·동요시키기 위한 데에 있었던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위와 같은 S 총장의 강제연행행위는 위법한 체포행위라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거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의 직무상 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위 체포 당시 시행되고 있던 군법회의법에 의하면, 군인인 피의자를 구속할 경우에는 검찰관이 사전에 관할관의 구속영장을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1987. 12. 4. 법률 제3993호 군사법원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제237조 제1항), 긴급을 요하여 관할관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는 때에 군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구속하는 경우에는 미리 검찰관의 지휘를 받아야 하며, 다만 특히 급속을 요하여 미리 지휘를 받을 수 없는 사유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즉시 검찰관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었는바(1981. 4. 17. 법률 제3444호로 개정되기 전의 제242조 제1항, 제2항), 당시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경우에는 현행범이거나 긴급구속의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전에 검찰관이 관할관(육군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는 국방부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1987. 12. 4. 법률 제3993호 군사법원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군법회의법 제6조, 제7조, 제11조, 1990. 8. 1. 법률 제4249호로 개정되기 전의 국군조직법 제9조 각 참조).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H 등이 피고인 A의 지시에 따라 S 총장을 체포함에 있어서 사전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아니하였고 군검찰관의 지휘를 받지도 아니하였으며, 미리 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는 긴급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지도 아니하므로, S 총장의 강제연행행위는 법률에 규정된 체포절차를 밟지 아니한 것으로서 위법함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2) 대통령의 재가에 의하여 S 총장의 체포행위 등이 정당화되었다는 피고인 C, G, H의 변호인 T의 주장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피고인 A가 1979. 12. 12. 18:20경 국무총리 공관에 가서 V 대통령에게 S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였을 때 대통령이 묵시적으로라도 이를 승낙하였다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오히려 이를 거절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1979. 12. 13. 05:10경 S 총장의 체포를 재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S 총장이 체포되고,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동원한 병력에 의하여 육군본부와 국방부가 점령되고 육군참모차장 육군중장 W,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육군소장 X 등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을 이루면서 피고인들의 반란을 저지 또는 진압하려고 한 장성들이 제압된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는 사후 승낙에 불과하며, 사후 승낙에 불과한 위 재가로 인하여 이미 성립한 피고인들의 기왕의 반란행위에 해당하는 S 총장의 체포행위나 병력동원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의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S 총장의 체포행위가 반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피고인 C, D, E, F, G, H, I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군형법상 반란죄는 다수의 군인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국권에 반항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국권에는 군의 통수권 및 지휘권도 포함된다고 할 것인바,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 없이 적법한 체포절차도 밟지 아니하고 정승화 총장을 체포한 행위는 정승화 총장 개인에 대한 불법체포행위라는 의미를 넘어 대통령의 군통수권 및 육군참모총장의 군지휘권에 반항한 행위라고 할 것이며, 원심이 적법히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위와 같은 행위를 한 이상 이는 반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반란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대통령을 강압하지 아니하였다는 피고인들의 변호인 B, Y, Z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 A가 1979. 12. 12. 20:20경 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AA,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AB에게 지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제55경비대대 병력을 이끌고 당시 대통령이 사용하고 있던 국무총리 공관으로 출동하여 같은 날 20:40경 위 공관의 경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AC와 특별경호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 후 그 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병력으로 위 공관을 장악하고 그 곳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위 공관을 점거·포위하게 한 사실, 이어서 피고인 A가 당시의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피고인 Q, 제1군단장 육군중장 피고인 C, 수도군단장 육군중장 피고인 D 및 당시의 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AD와 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AP 등과 함께 같은 날 21:30경 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S총장의 연행·조사에 대한 재가를 재차 요구하면서 대통령을 강압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에 반항하는 행위로서 반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이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반란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사실과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사건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아 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위 AA 등이 국무총리 공관을 점거·포위한 가운데 위 피고인 등 수도권의 군 지휘관 등이 늦은 저녁시간에 갑자기 집단으로 대통령을 방문하여 1시간이 넘도록 머물면서 S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거듭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행위는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에 대한 강압이라고 보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이와 반대되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병력동원의 불법성
(1) 피고인들의 병력동원이 적법한 행위라는 주장 등에 대하여
원심은 1979. 12. 12. 20:30경 육군본부에 집결한 위 W 차장, AE 국방부차관, X 수경사령관 등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서는 같은 날 21:00경 제30경비단에 모여 있던 일부 피고인들에게 S 총장의 석방을 명령하였으나 피고인들이 이를 거부하였고, 이에 W 차장은 휘하의 각 부대에게 그의 육성지시 없이는 출동을 하지 아니하도록 명하고 그 무렵 제1공수여단이 출동하였다는 첩보를 접한 뒤 육군본부를 방어하기 위하여 제9공수여단의 출동을 명령하는 등 피고인들을 진압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사실, 이에 대응하여 피고인들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아니함은 물론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권 아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 정식지휘계통을 공격하기로 하는 한편, 그에 앞서 피고인 Q가 S 총장의 체포에 대하여 항의하는 X 수경사령관을 회유하고 W 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군본부 측의 병력동원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따라 피고인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한 사실, 그러던 중 W 차장은 X 수경사령관의 건의에 따라 피고인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제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에 대하여 출동준비명령을 내렸으며, X 수경사령관은 수도경비사령부 소속의 장교 및 사병을 인솔하여 제30경비단에 집결한 피고인들에 대한 공격을 준비한 사실, 한편 피고인 F는 제30경비단 소속 전차에 포탄을 장전하는 등 대항체제를 구축한 사실, 이어서 피고인 A는 국군보안사령관 사무실에서 육군정식지휘계통에 대한 선제공격을 결의하고, 이에 따라 1979. 12. 12. 23:00경부터 위 피고인 및 피고인 O, C 등이 지시하여 동원된 병력이 같은 날 24:00경부터 1979. 12. 13. 06:20경까지 사이에 육군본부 건물, 국방부 청사, 중앙청, 경복궁, 효창운동장, 고려대학교 등을 점령하는 한편,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육군소장 AF 및 X 수경사령관을 각 체포하고 수도경비사령부에 모여 있던 W 차장 및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육군소장 AG, 합동참모본부장 육군중장 AH 등 육군본부 측 장성들의 무장을 해제한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거나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들이 S 총장을 체포한 행위가 반란에 해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한편 S 총장이 반란집단에 의하여 체포됨으로써 사고를 당하였으므로, 당시 시행되고 있던 국군조직법에 의하여 W 차장이 S 총장을 대행하여 육군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었고( 제10조 제1항, 1990. 8. 1. 법률 제4249호로 개정되기 전의 제10조 제2항, 1987. 12. 4. 법률 제3994호로 개정되기 전의 제14조 제4항), 따라서 위 W 차장이 앞서 본 바와 같이 S 총장의 석방 명령에 불응하는 피고인들의 공격에 대비하거나 피고인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부대의 출동준비 또는 출동을 명령한 것은 정당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시행되고 있던 수도경비사령부설치령에 의하면, 수도경비사령부는 한강 이북의 수도권 일원과 특정경비구역(국가원수가 위치하는 지역으로서 경호를 위하여 필요한 상당한 범위의 지역, 이하 같다)의 안전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육군에 설치된 부대로서( 제1조) 국가원수의 경호 및 특정경비구역의 경비, 긴급사태에 있어서의 수도방위 등을 그 임무로 하게 되어 있는바(1980. 5. 12. 대통령령 제9870호로 개정되기 전의 제2조), X 수경사령관이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들에 대하여 공격을 준비한 행위는 반란집단인 피고인들로부터 국가원수를 경호하고 특정경비구역을 경비하며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반란행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한 행위라고 할 것이므로, 이는 수도경비사령부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서 정당한 직무의 집행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만 위 수도경비사령부설치령 제4조 제4항(1980. 5. 12. 대통령령 제987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의하면, 특정경비구역과 관련한 작전활동에 대하여 수도경비사령관이 대통령 경호실장의 통제를 받도록 하고 있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AA와 경호실 작전담당관 AB가 피고인 A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이끌고 대통령이 소재한 국무총리 공관을 위법하게 점거하고 대통령이 반란을 일으킨 피고인들에 의하여 강압을 받고 있는 상태에 있었던 것이라면, X 수경사령관이 반란을 일으킨 피고인들에 대하여 공격을 준비함에 있어서 미리 대통령의 승인이나 위 AA의 통제를 받지 아니한 점을 들어 반란을 일으킨 피고인들에 대한 X 수경사령관의 위 공격준비행위가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들이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 대항하여 병력을 동원한 행위는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군의 지휘권에 반항하는 행위로서 반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당시 육군의 정식지휘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W 차장 등의 육군에 대한 명령과 지휘가 위법하거나 무효라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국방부장관 AI가 1979. 12. 12. 21:30경 육군본부에 도착하여 W 차장 등으로부터 피고인들의 반란행위와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 받은 뒤 자체 방위능력을 갖지 못한 육군본부로부터 방위능력이 있는 수도경비사령부로 육군지휘부를 옮기도록 W 차장에게 명령하고, 자신은 AJ 합참의장 등과 함께 감청방지장치가 설치된 한미연합사 사령부로 가서 그 곳에서 W 차장 등과 연락을 취하면서 22:30경에는 대통령과 전화통화까지 한 사실, W 차장 등 육군의 수뇌부는 그 무렵 육군 지휘부를 수도경비사령부로 옮긴 뒤 국방부장관 및 예하부대와 통신축선을 유지하면서 피고인들의 반란에 대처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당시 육군의 정식 지휘체계가 붕괴되어 W 차장 등의 명령과 지휘가 위법하다거나 무효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거나 육군의 지휘체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구출병력의 동원 및 대항체제의 구축이 반란행위가 아니라는 피고인 F의 변호인 Y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 F가 피고인 G로부터 S 총장의 체포를 위하여 총장공관에 갔던 제33헌병대가 위 공관의 경비를 맡고 있던 해병대 병력에게 포위당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수도경비사령부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 AK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 중대 병력을 인솔하여 위 제33헌병단을 구출하기 위하여 총장공관으로 출동하도록 한 사실, 육군본부에 집결한 정식지휘계통에서 제30경비단에 모여있던 일부 피고인들에게 S 총장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고인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이를 진압할 태세를 갖추자, 피고인 F가 제30경비단 소속 전차에 포탄을 장전하는 등 대항체제를 구축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피고인이 위와 같이 구출병력을 동원하도록 한 것은 S 총장을 체포한 반란집단에 가담한 행위로서, 전차에 포탄을 장전하는 등 대항체제를 구축한 것은 반란을 진압하려고 한 수도경비사령관의 정당한 직무집행에 반항하는 행위로서 모두 반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이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반란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4) 피고인들의 병력동원이 정당방위 또는 긴급피난이라는 피고인 C, G, H의 변호인 T의 주장에 대하여
(가)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이어야 할 것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W 차장의 부대출동명령이나 그 출동준비명령과 X 수경사령관의 피고인들에 대한 공격준비행위는 피고인들의 불법공격에 대비하거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정당한 직무집행으로서, 이를 가리켜 현재의 부당한 침해행위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이에 대항한 피고인들의 병력동원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이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그리고 긴급피난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행위자에게 피난의 의사가 있어야 할 것인데,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병력을 동원한 것은 위난을 피할 의사에 의한 것은 아니고 반란목적을 달성할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보이므로, 피고인들에게 피난의 의사가 있었다고도 할 수 없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이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긴급피난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라. 지휘부를 설치·운영하지 아니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 A와 O가 그들을 지지하는 피고인 Q, C, D, E 등을 역시 그들을 지지하는 피고인 F의 사무실인 제30경비단 단장실에 집결시켜 유사시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피고인 O와 A의 연락에 따라 피고인 O, Q, C, D, E, F 등이 1979. 12. 12. 18:00경부터 같은 날 19:00경 사이에 제30경비단 단장실에 집결하여 지휘부로 기능하고, 한편 피고인 A는 피고인 G로 하여금 당시의 보안사령부 정보처장 AL, 보안처장 AM 등과 함께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상황을 파악하여 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게 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는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마. 반란의 모의 등
(1) 반란의 모의 또는 공동실행의 의사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 A와 O가 군의 지휘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S 총장을 체포하는 등의 이 사건 반란을 모의한 뒤, 피고인 H, I는 1979. 12. 9.경 피고인 A의 지시에 따라 S 총장의 구체적인 체포계획을 세우면서 그 계획에 따른 체포행위가 위법한 것임을 알면서도 피고인 A와 이 사건 반란을 모의하였고, 피고인 G는 피고인 H 등이 S 총장을 체포하기 위하여 병력을 이끌고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출발하기 이전부터 이 사건 반란을 포괄적으로 인식·용인하고 이에 가담할 의사로 앞서 본 바와 같이 부대동향과 병력이동상황을 파악하여 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피고인 C, D, E, F는 제30경비단의 모임이 S 총장의 연행·조사문제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개괄적으로 인식하고 1979. 12. 12. 18:00경부터 19:00경까지 사이에 제30경비단 단장실에 참석한 후 그 무렵 S 총장 체포의 실행행위를 인식하고 이를 지지하면서 나아가 그 후 이루어진 대통령에 대한 강압·병력동원 등의 반란행위도 포괄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이 사건 반란의 모의에 참여하거나 반란실행을 위하여 동원된 병력을 지휘한 사실, 피고인 J는 직근상관인 피고인 E로부터 AF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고, 피고인 K는 직근상관인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 AN으로부터 X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아 각자의 직근상관의 지시내용이 상급상관인 AF 특전사령관 또는 X 수경사령관 및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 반항하는 것임을 인식하면서도 위 각 지시에 따름으로써 위 피고인들의 반란행위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그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인 A, O를 비롯하여 피고인 C, D, E, F, G, H, I는 군의 지휘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S 총장의 체포, 그 후의 대통령에 대한 강압·병력동원 등의 반란행위에 대하여 개별적 또는 순차적으로 모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적어도 S 총장의 체포를 알고 난 뒤 이를 용인하고 지지하면서 집단을 이루어 병력을 동원하거나 이에 가담한 이상 공모하여 반란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고, 피고인 J, K는 위 병력동원행위가 반란행위임을 인식하고 이를 공동으로 실행할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거나 반란의 공동실행의 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반란죄의 공동실행의 의사 등에 관한 이유불비가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반란죄를 범한 다수인의 공동실행의 의사나 그 중 모의참여자의 모의에 대한 판시는 그 공동실행의 의사나 모의의 구체적인 일시·장소·내용 등을 상세하게 판시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공동실행의 의사나 모의가 성립된 것이 밝혀지는 정도면 족하다고 할 것인바, 원심판결의 이유에는 피고인들이 각자 이 사건 반란의 공동실행의 의사를 가지고 앞서 본 반란지휘부 등에서 모의에 참여하거나 반란실행을 위하여 동원된 병력을 지휘하거나 반란살상을 하였다는 취지가 설시되어 있으므로,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이유불비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바. 명령복종행위의 위법성 및 책임성
(1) 상관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행위라는 피고인 H, J, K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상관의 적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른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것이나,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부하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 고 할 것이다.
피고인 H가 피고인 A의 지시를 받고 병력을 이끌고 가서 S 총장을 체포한 행위나 피고인 J가 제3공수여단장인 피고인 E의 지시를 받고 병력을 이끌고 가서 AF 특전사령관을 체포한 행위 및 피고인 K가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 AN의 지시를 받고 병력을 이끌고 가서 X 수경사령관을 체포한 행위는 앞서 본 바와 같이 모두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서 범죄행위를 한 것이므로, 위 피고인들이 각자의 직근상관의 명령에 따라 위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하여 위 피고인들의 행위가 정당행위가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위법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위법성의 인식이 없거나 기대가능성이 없어 책임이 조각된다는 피고인 H, I, J, K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H, I는 S 총장의 체포행위가 위법한 것임을 알면서도 피고인 A와 함께 이 사건 반란을 모의하여 S 총장의 구체적인 체포계획을 수립하고, 피고인 H는 이를 실행하였으며, 피고인 J, K의 경우에도 각자의 직근상관의 명령이나 이에 따른 AF 특전사령관 또는 X 수경사령관의 체포행위가 상급상관인 위 AF 또는 X 및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 반항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이 사건 반란에 가담하였던 것이므로, 위 피고인들이 그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당시 위 피고인들에게 각 직근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르지 아니하고 적법행위에 나아갈 기대가능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아니한다.
같은 취지의 원심의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인 A, O의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및 불법진퇴의 점에 대하여
(1) 수소(守所)에 관한 채증법칙 위반의 주장에 대하여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지휘관이 부대를 인솔하여 수소를 이탈하여야 하는바, 원심은 지휘관 AO가 인솔하여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출동한 제33헌병대와 지휘관 AP가 인솔하여 국방부·육군본부를 점령한 제1공수여단 및 지휘관 E가 인솔하여 경복궁을 점령한 제3공수여단이 이 사건 반란 당시 작전지역으로서의 일정한 수소를 부여받고 있었다거나, 그 수소가 구체적으로 어느 곳인지에 관하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위 피고인들이 위 각 지휘관과 공모하여 행한 병력출동이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에 해당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죄수에 관한 법리오해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위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지휘관 AQ로 하여금 제9사단 제29연대, 제30연대 병력을, 지휘관 AR로 하여금 제30사단 제90연대 병력을 각 인솔하고 각 그 부대의 주둔지에서 이탈하여 서울지역으로 이동하게 한 것은 각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 및 불법진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지휘관 AS로 하여금 제5공수여단 병력을, 지휘관 AT로 하여금 제2기갑여단 제16전차대대 병력을 각 그 부대의 주둔지에서 서울지역으로 이동하게 한 것은 각 불법진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나, 위 각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및 불법진퇴는 이 사건 반란의 진행과정에서 그에 수반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반란 자체를 실행하는 전형적인 행위라고 인정되므로, 반란죄에 흡수되어 별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이용훈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4.의 가. 참조).
나. 피고인 A, O의 초병살해, 상관살해미수, 살인의 점에 대하여
(1) 공동실행의 의사에 관한 채증법칙 위반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위 피고인들이 국방부 초병 AU의 살해행위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AG의 살해미수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또 피고인 O가 특전사령관 AF의 살해미수행위와 그의 비서실장 AV의 살해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죄수에 관한 법리오해의 주장에 대하여
반란죄는 다수의 군인이 작당하여 넓은 의미의 폭행·협박으로 국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벌어질 수 있는 살인, 약탈, 파괴, 방화, 공무집행방해 등 각종의 범죄행위를, 반란에 가담한 자들이 개별적으로 인식 또는 용인하였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의 반란행위로 묶어 함께 처벌하는 데에 그 특질이 있는 집단적 범죄이므로, 반란에 가담한 자는 그에게 반란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과 공동실행의 의사만 있으면 반란을 구성하는 개개의 행위인 살인, 약탈, 파괴 등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지시하거나 용인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살인 등 반란을 구성하고 있는 행위의 전부에 대하여 반란죄의 정범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할 것이다.
한편 반란에 가담한 자 중에서 반란을 구성하고 있는 특정의 살인행위를 직접 실행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살인행위를 개별적으로 지시하거나 용인하는 등 공동실행의 의사가 있는 자는 그 살인행위에 대하여 반란죄와는 별도로 살인죄의 책임도 져야 할 것이나, 그 살인행위에 대한 공동실행의 의사가 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살인행위에 대하여 반란죄의 책임 이외에 별도로 살인죄의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위 피고인들이 지시하거나 용인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위 AU의 살해, 위 AG의 살해미수의 각 행위는 위 피고인들에 대한 관계에서 초병살해죄, 상관살해미수죄를 구성할 수 없고, 피고인 O가 지시하거나 용인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위 AF에 대한 살해미수, 위 AV에 대한 살인의 각 행위는 위 피고인에 대한 관계에서 상관살해미수죄, 살인죄를 구성할 수 없으며, 각각 이 사건 반란행위의 일부를 구성할 뿐이라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 피고인 P의 반란의 점에 대하여
피고인 P에 대한 공소사실(원심에서 변경됨)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즉, 피고인 P는 이 사건 공동피고인 등과 함께 S 총장을 강제 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하기로 하는 등 공모하여, 공동피고인 O, Q, C, D, E, F 등과 함께 1979. 12. 12. 18:00경부터 19:00경까지 사이에 제30경비단의 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고 제30경비단에 계속 머무르면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제20사단 부대장악을 저지·방해함으로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하였다는 것이다.
원심은 그 내세운 증거를 종합하면, 제20사단장인 피고인 P가 1979. 12. 12. 18:00경부터 19:00경 사이에 제30경비단 모임에 참석한 후, 같은 날 20:30경 '진도개 하나' 비상이 발령되고 육군참모차장 W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AG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서도 부대에 복귀하지 아니한 채 제20사단의 참모장, 인사참모, 정보참모, 군수참모, 사단장 비서실장, 제61연대장, 제62연대장에게 한두 번씩 전화를 걸어 부대를 잘 장악하고 자신의 육성지시 없이는 병력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피고인 P가 S 총장의 연행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것임을 미리 알고 제30경비단에 갔는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이에 부합하는 취지의 제5공화국전사의 기재는 그 작성자의 공판기일의 진술에 의하여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된 바가 없어 증거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고 달리 이 점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며, 피고인 P가 제30경비단에서 반란지휘부를 구성한 한 사람으로서 만약의 경우에는 병력을 동원하여 반란을 지원하기로 하였는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이에 부합하는 취지의 제1심 제18회 공판조서 중 증인 AW의 진술기재, 검사작성의 D와 AW에 대한 각 진술조서 및 공동피고인 D에 대한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는 뒤에서 인정되는 사정 등에 비추어 믿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그 내세운 증거에 의하면, 육군 정식지휘계통이 제20사단을 적극적으로 장악하여 그 동원을 해보려고 시도하여 본 일이 없고, 다만 공동피고인 A 등 반란집단을 위하여 제20사단이 동원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였음에 불과한 점, 피고인 P가 적어도 불암산에 주둔하고 있는 제20사단 제62연대는 언제라도 반란집단을 위하여 동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원하지 아니한 점, 제20사단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피고인 P의 조치는 육군본부의 제20사단에 대한 출동금지지시와 오히려 일치한 점, 피고인 P가 제30경비단에 남아 있으면서도 반란집단을 위하여 뚜렷하게 기여한 바가 없었으며, 다른 피고인들과 일치된 행동을 하지 아니한 점 등이 드러나므로, 피고인 P가 12. 12. 저녁에 제30경비단의 모임에 참석하고 부대에 복귀하지 아니한 채 참모들에게 부대를 잘 장악하고 자신의 육성지시 없이는 부대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다고 하여, 이를 가지고 바로 피고인 P가 제30경비단에서 반란지휘부에 참여하고 반란의 범의를 가지고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제20사단 부대장악을 저지·방해함으로써 반란에 가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 사건에서 채용된 증거를 종합하여도 피고인 P가 반란지휘부의 일원이 되어 반란에 가담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피고인 P에 대한 공소사실은 그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형사재판에서의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3. 3. 23. 선고 92도3327 판결, 1995. 12. 12. 선고 94도2253 판결, 1996. 3. 8. 선고 95도3081 판결 등 각 참조).
위와 같은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볼 때, 원심이 제5공화국전사의 증거능력을 배척한 조처나, 피고인 P가 반란의 범의를 가지고 이 사건 반란에 가담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한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심리미진이나 채증법칙 위반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지창권,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 대법관 송진훈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3. 참조).
제3장 이른바 5·18내란 등 사건 부분
1. 피고인 C, D, G, H, I, L, M, N(이하 1.항에서는 '피고인들'이라고 한다)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국헌문란의 목적
(1)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가 국헌문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형법 제91조 제2호에 의하면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의 목적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그 기관을 제도적으로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상당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고 전제하고는, 그 내세운 증거에 의하여,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1980. 5. 초순경부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비상대책기구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등을 마련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같은 달 17.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결의된 군부의 의견인 것을 내세워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여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시키는 등의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선포하게 함으로써, 국방부장관의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배제하였으며, 그 결과로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 그리고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사실, 같은 달 27. 그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1981. 4. 17. 법률 제344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9조, 제11조, 제12조 및 정부조직법(1981. 4. 8. 법률 제342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에 근거하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및 그 산하의 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상임위원장에 피고인 A가 취임하여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 중요한 국정시책을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하여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것은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은 행정에 관한 대통령과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역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구 계엄법과 구 정부조직법 등 관계 법령의 각 규정과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심리미진,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시위진압행위가 국헌문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등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을 정의하면서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제1호)과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제2호) 등 두 가지를 들고 있는 것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여 그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여야 할 것인데,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주권자의 입장에 서서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갖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민이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집단이나 집단 유사의 결집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일정한 시점에서 담당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적어도 그 기간 중에는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 행위는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다음,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의 국헌문란행위에 항의하는 광주시민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광주시민들의 시위를 피고인들이 병력을 동원하여 난폭하게 제지한 것은 강압에 의하여 그 권한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어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그렇지 아니하다고 하더라도 원래 국헌문란의 죄에 있어서 강압의 대상과 폭동의 대상은 분리될 수 있는바, 피고인들이 국헌문란행위를 항의하는 광주시민의 시위를 난폭하게 제압함으로써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하게 하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으므로, 이러한 측면에서도 피고인들의 시위진압행위는 국헌문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생각건대, 헌법상 아무런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만으로 헌법수호를 목적으로 집단을 이룬 시위국민들을 가리켜 형법 제91조 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그리고 원심이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고 있다고 본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위 법률 조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헌법수호를 위하여 시위하는 국민의 결집을 헌법기관으로 본 원심의 조처는 결국 유추해석에 해당하여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1980. 5. 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난폭하게 진압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보다 강한 위협을 가하여 그들을 외포하게 하였다면, 이 사건 시위진압행위는 피고인들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고, 이는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었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의 사실인정 및 가정적인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결국 앞서 본 원심의 잘못은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원심이 명시적으로 '저항권'이론을 수용한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원심이 대법원 판례를 위반하여 '저항권'이론을 수용하였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피고인들의 행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을 통하여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함과 아울러 국가의 정보기관을 완전히 장악한 뒤, 1980. 5. 초순경부터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마련하여 이를 검토, 추진하기로 모의하고, 그 계획에 따라 1981. 1. 24.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예비검속,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국회의사당 점거·폐쇄, 보안목표에 대한 계엄군 배치, 광주시위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운영, 정치활동 규제 등 일련의 행위를 강압에 의하여 행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행한 위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결국 강압에 의하여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회의, 국회의원 등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배제함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위 일련의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 그 경위 및 결과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피고인들이 1980. 5. 17.을 전후한 이 사건 범행 당시에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 자유심증주의 위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목적범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폭동성
(1) 비상계엄 전국확대의 폭동성
(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에 폭동성이 없다는 피고인 C, D, G, H, I, L,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형법 제87조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 또는 협박은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를 의미하는 최광의의 폭행·협박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를 준비하거나 보조하는 행위를 전체적으로 파악한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 .
그런데 1980. 5. 17.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 등 관계 법령에 의하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게 되므로( 제11조, 제12조, 제13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고, 민간인인 국방부장관은 지역계엄실시와 관련하여 계엄사령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지휘감독권을 잃게 되므로( 제9조), 군부를 대표하는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됨은 물론 국방부장관이 계엄업무로부터 배제됨으로 말미암아 계엄업무와 일반국정을 조정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마저도 배제됨으로써,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받는 강압의 효과와 그에 부수하여 다른 국가기관의 구성원이 받는 강압의 정도가 증대된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의 그와 같은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 고 할 것이다.
한편 범죄는 '어느 행위로 인하여 처벌되지 아니하는 자'를 이용하여서도 이를 실행할 수 있으므로( 형법 제34조 제1항), 내란죄의 경우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가 그러한 목적이 없는 자를 이용하여 이를 실행할 수도 있다 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피고인들은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후,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미쳐 국권을 사실상 장악하는 한편,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한을 사실상 배제하고자 하는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결의된 군부의 의견인 것을 내세워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여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시키는 등의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선포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위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선포함으로써 외형상 적법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인들에 의하여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하고, 또한 이는 피고인들에 의하여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러한 목적이 없는 대통령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피고인들이 간접정범의 방법으로 내란죄를 실행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죄형법정주의 및 간접정범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비상계엄 선포나 확대의 법률요건 구비 여부는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므로, 이 사건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가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피고인 C, D, G, H, I, L,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과 같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이 사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에 해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므로 이 점에 관한 원심판결의 이유설시에 적절하지 아니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사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하여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피고인 L,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협박의 정도가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음을 요함은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으나, 기록에 의하면, 위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행·협박이 우리 나라 전국의 평온을 해하는 정도에 이르렀음을 인정할 수 있다.
피고인들의 폭동으로 말미암아 한 지방의 평온이 해하여졌음을 전제로 한 원심의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시위진압의 폭동성
(가) 시위진압행위에 폭동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계엄군이 난폭하게 광주시민의 시위행위를 진압한 행위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협박에 해당함은 명백하고,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러한 목적이 없는 계엄군을 이용하여 위와 같이 난폭하게 시위를 진압하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는 피고인들이 간접정범의 방법으로 내란죄 등을 실행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간접정범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피고인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간접정범이 성립하려면 피이용자에 대한 행위지배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기록에 의하면, 위 피고인이 광주시위 진압에 투입된 특전사의 사령관으로서, 피고인 A 등과 공모하여 이 사건 내란을 모의하고 그 실행을 위한 준비까지 마친 후, 광주시위에 대하여 공수부대의 파견에 관여한 점 등을 알 수 있으니, 피고인 N에게 위와 같은 행위지배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위 피고인이 내란죄 및 내란목적살인죄의 간접정범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며,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간접정범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개별행위에 폭동성이 없다는 피고인 C, D, G, H, I, L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협박은 최광의의 폭행·협박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를 준비하거나 보조하는 행위를 전체적으로 파악한 개념이라고 할 것인바,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이, 이 사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전후하여 취하여진 이른바 예비검속에서 시작하여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는 일련의 개별행위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로 인한 폭동행위를 유지 또는 강화하기 위하여 취하여진 조치들로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의 폭동성과 아울러 볼 때, 그 폭동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의 위법 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 내란의 모의와 실행행위에 가담하지 아니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하고,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1980. 5. 초순경부터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마련한 후, 개별적 또는 순차적으로 상의하는 방법으로 이를 검토·추진하기로 모의하였으며, 그 계획에 따라 같은 해 5. 17. 학생·정치인·재야인사의 체포로부터 시작하여 1981. 1. 24.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사이에 행한 일련의 폭동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그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인들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을 가지고,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기로 개별적 또는 순차적으로 모의함으로써 이미 내란집단을 형성한 것이며, 이를 기초로 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계기로 계엄군의 위력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내란의 범의를 실현시켜 나가면서, 내란집단의 구성원 상호간의 연락과 용인하에 위와 같은 일련의 내란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가사 피고인들이 위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이를 모의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란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전체로서의 내란에 포함되는 개개의 행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라도 그 모의에 참여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기여하였음이 인정되는 이상, 하나의 내란을 구성하는 위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내란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 혹은 자유심증주의 위반 혹은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공동정범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원심판결 이유에는, 피고인들이 모의를 하고 그에 따라 범행을 직접 실행하거나 다른 피고인들의 행위를 통하여 이를 실현하였다는 취지가 설시되어 있으므로, 공모나 모의의 사실이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다고 볼 수 없고, 거기에 피고인 C, D, G, H, I, N의 변호인들이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이유불비나 이유모순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라. 내란목적살인
(1) 살인에 대한 공동실행의 의사가 없고, 그 실행행위에 가담한 바가 없으며, 살인과 국헌문란의 목적 사이에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피고인 C, L, M,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그 내세운 증거를 종합하여, 광주재진입작전(이른바 '상무충정작전') 계획은 1980. 5. 21.경부터 육군본부에서 여러 번 논의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피고인 L이 같은 달 25. 오전에 AX 작전참모부장에게 지시하여 육본작전지침으로 이를 완성하여, 같은 날 12:15 국방부 내 육군회관에서 피고인 A, C, L, M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같은 달 27. 00:01 이후 이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피고인 C는 같은 달 25. 오후 AX 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광주에 내려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사령관 육군소장 AY에게 이를 직접 전달하는 한편, 위와 같이 광주재진입작전이 논의되던 중인 같은 해 5. 23. 12:30경 AZ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무장 헬기 및 전차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지시하였고, 피고인 N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의 모체부대장으로서 공수여단에 대한 행정, 군수지원 등의 지원을 하는 한편, AY 전교사령관에게 공수여단의 특성이나 부대훈련상황을 알려 주거나 재진입작전에 필요한 가발, 수류탄과 항공사진 등의 장비를 준비하여 예하부대원을 격려하는 등 광주재진입작전의 성공을 위하여 측면에서 지원하였으며, 위 작전지침에 따라 전교사령관 AY가 공수여단별로 특공조를 편성하여 전남도청 등 목표지점을 점령하여 20사단에 인계하기로 결정하는 등 구체적인 작전계획과 작전준비를 하였고, 이에 따라 공수여단 특공조가 같은 달 26. 23:00경부터 침투작전을 실시하여 광주재진입작전을 개시한 이래 같은 달 27. 06:20까지 사이에 전남도청, 광주공원, 여자기독교청년회(YWCA) 건물 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그 특공조 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하여 BA 등 18명을 각 사망하게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광주재진입작전을 실시하여 전남도청 등을 다시 장악하려면 위와 같이 무장을 하고 있는 시위대를 제압하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대와의 교전이 불가피하여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생기게 되므로, 피고인 A 및 위 피고인들이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 재진입작전의 실시를 강행하기로 하고 이를 명령한 데에는 그와 같은 살상행위를 지시 내지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분명하고, 재진입작전명령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시위대의 무장상태 그리고 그 작전의 목표에 비추어 볼 때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그 실시명령에는 그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며, 당시 위 피고인들이 처하여 있는 상황은 광주시위를 조속히 제압하여 시위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아니하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바꾸어 말하면 집권에 성공할 수 없는, 중요한 상황이었으므로, 광주재진입작전을 실시하는 데에 저항 내지 장애가 되는 범위의 사람들을 살상하는 것은 내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직접 필요한 수단이었다고 할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은 피고인 A와 공동하여 내란목적살인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이나 심리미진 또는 내란모의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내란목적살인죄가 내란죄에 흡수된다는 피고인 C, M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형법 제88조의 내란목적살인죄는 국헌을 문란할 목적을 가지고 직접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살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 할 것이므로,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내란죄가 '폭동'을 그 수단으로 함에 비하여 내란목적살인죄는 '살인'을 그 수단으로 하는 점에서 두 죄는 엄격히 구별된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란의 실행과정에서 폭동행위에 수반하여 개별적으로 발생한 살인행위는 내란행위의 한 구성요소를 이루는 것이므로 내란행위에 흡수되어 내란목적살인의 별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나, 특정인 또는 일정한 범위내의 한정된 집단에 대한 살해가 내란의 와중에 폭동에 수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의도적으로 실행된 경우에는 이러한 살인행위는 내란에 흡수될 수 없고 내란목적살인의 별죄를 구성한다 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광주재진입작전 수행으로 인하여 피해자들을 사망하게 한 부분에 대하여 내란죄와는 별도로 내란목적살인죄로 다스린 원심의 조처는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내란목적살인죄와 내란죄의 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불고불리원칙 위반이라는 피고인 C, D, G, H, I,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이 사건 공소장의 공소사실에 광주재진입 작전명령을 사실상 발포명령이라고 기재하고 있지는 아니하나, 그 공소사실에 위 광주재진입작전의 수행과정을 자세히 설시하고 있음이 분명한 이상, 원심이 그 공소사실에 기재되어 있는 바와 같은 위 광주재진입작전의 수행과정을 인정한 다음, 위 광주재진입 작전명령에 '사실상 발포명령'이 들어 있다고 판단하였다고 하여, 이를 들어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당사자주의나 불고불리원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마. 내란죄의 종료시기와 관련한 피고인 C, D, G, H, I,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폭동에 의한 국헌문란의 죄는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에 이르게 된 때에 기수가 되나, 즉시범이 아니라 계속범이고, 우리 나라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존의 권력집단의 굴복만으로 내란이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이며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아니하여 내란집단에 저항하는 때에는 그 저항을 완전히 제압하거나 또는 반대로 내란집단이 국민의 저항에 굴복하기까지는 결코 종료된 것이 아니라고 전제한 다음, 이 사건의 경우 1980. 5. 18. 이후에 일어난 광주시민의 일련의 대규모 시위 같은 것이 바로 이러한 국민의 저항에 해당하고, 이러한 국민의 저항과 이에 대한 피고인들의 폭동적인 진압은 제5공화국정권이 1987. 6. 29. 이른바 6·29선언으로 국민들의 저항에 굴복하여 대통령직선제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간단없이 반복, 계속되었으며, 따라서 그 기간 중의 모든 폭동적인 시위진압은 이 사건 범죄사실란에서 폭동으로 인정한 것들을 포함하여 포괄하여, 하나의 내란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어서, 1980. 5. 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시작된 이 사건의 국헌문란의 폭동은 1987. 6. 29.의 이른바 6·29선언시에 비로소 종료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로서, 다수인이 결합하여 위와 같은 목적으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행위를 하면 기수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해석되므로, 다수인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을 하였을 때 이미 내란의 구성요건은 완전히 충족된다고 할 것이어서 상태범으로 봄이 상당하며, 따라서 원심이 이 사건 내란죄를 계속범으로 본 조처는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할 것이다.
한편 내란죄는 다수인이 결합하여 범하는 집단범죄적 성질을 가지고 있고, 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어야 성립되는 범죄이므로, 그 구성요건의 요소인 목적에 의하여 다수의 폭동이 결합되는 것이 통상이며, 따라서 내란죄는 그 구성요건의 의미 내용 그 자체가 목적에 의하여 결합된 다수의 폭동을 예상하고 있는 범죄라고 할 것이므로, 내란자들에 의하여 애초에 계획된 국헌문란의 목적을 위하여 행하여진 일련의 폭동행위는 단일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단순일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앞서 본 바와 같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일종의 협박행위로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에 해당하므로, 그 비상계엄 자체가 해제되지 아니하는 한 전국계엄에서 지역계엄으로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그 최초의 협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어서 그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는 이를 해제할 때까지 간단없이 계속되었다 할 것이고, 이와 같은 폭동행위가 간단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전후하여 그 비상계엄의 해제시까지 사이에 밀접하게 행하여진 이른바 예비검속에서부터 정치활동 규제조치에 이르는 일련의 폭동행위들은 위와 같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를 유지 또는 강화하기 위하여 취하여진 조치들로서 위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와 함께 단일한 내란행위를 이룬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위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포함한 일련의 내란행위는 위 비상계엄이 해제된 1981. 1. 24.에 비로소 종료되었다고 할 것이다.
한편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아도, 피고인들이 이 사건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원심 판시와 같이 이에 항거하는 시위를 진압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한 것으로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폭동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므로, 6·29선언시까지 원심 판시와 같은 각종 시위가 있었다고 하여 그 때까지 피고인들의 모든 시위진압이, 이 사건 범죄사실란에서 폭동으로 인정한 것들을 포함하여, 포괄하여 하나의 내란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원심의 조처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결국 원심이 위와 같이 내란죄를 계속범이라고 본 점과 내란죄의 종료시기를 1987. 6. 29. 이른바 6·29선언시로 본 점은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잘못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피고인들의 내란죄 등에 대한 공소시효가 5·18특별법 제2조에 따라 1993. 2. 25.부터 진행한다고 할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에 대한 내란 등 사건의 공소는 그 공소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기소되었음이 명백하므로, 원심의 위와 같은 잘못은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
바. 군사반란과 관련한 피고인 C, D, G, H, I,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위 피고인들이 피고인 A, O와 1980. 5. 초순경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하고 내란을 모의하면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를 계기로 계엄군을 동원하여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강압하는 방법으로 반란하기로 공모하여, 1980. 5. 17. 저녁 비상계엄 전국확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임시국무회의장에 소총 등으로 무장한 수경사의 병력을 배치하고, 같은 달 18. 01:45경부터 무장한 제33사단 병력을 국회의사당에 배치·점거하여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같은 달 20.경 일부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저지하게 하는 등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나아가 가사, 위 피고인들이 위와 같은 병력의 배치 등 반란의 구체적·개별적 실행행위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반란죄는 다수인이 집단을 이루어 반란이라는 하나의 행위에 나아가는 것이므로, 반란집단을 구성한 사람들 각자가 반란행위를 포괄적으로 인식, 용인하고 있는 한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개별적인 반란행위에 대하여도 반란죄의 책임을 진다고 할 것인데, 위와 같이 위 피고인들이 반란하기로 공모하여 반란집단을 구성한 이상 반란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이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반란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사. 위법성조각사유 등
(1)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및 개별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른바 위법성 조각사유로서의 정당행위, 즉 법령에 근거하여 행하여진 권리행사로서의 행위와 직접적으로 법령상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행위를 업무로서 행하는 행위 및 법령에 근거하거나 정당한 업무로 하는 행위에 속하지 아니하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행위 등은 일반적으로 정당한 행위는 적법하다는 원칙에 따라 그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법성 조각사유로서의 정당행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먼저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여야 할 것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들의 위 각 행위는 모두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한 것이므로,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어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시위진압행위가 정당행위, 정당방위·과잉방위, 긴급피난·과잉피난에 해당하여 처벌할 수 없거나 그 형을 면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정당행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여야 하고, 정당방위·과잉방위나 긴급피난·과잉피난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방위의사 또는 피난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원심은 피고인들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시국수습방안의 실행을 모의할 당시 그 실행에 대한 국민들의 큰 반발과 저항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여 '강력한 타격'의 방법으로 시위를 진압하도록 평소에 훈련된 공수부대 투입을 계획한 후, 이에 따라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진압봉이나 총 개머리판으로 시위자들을 가격하는 등으로 시위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도망하는 시위자를 점포나 건물 안까지 추격하여 대량으로 연행하는 강경한 진압작전을 감행하였으며, 이와 같은 난폭한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함으로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그 후 일부 시민의 무장저항이 일어났으며, 나아가 계엄군이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귀중한 국민의 생명을 희생하여서라도 시급하게 재진입작전을 강행하지 아니하면 안될 상황이나 또는 광주시민들이 급박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있다고 볼 수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위를 조속히 진압하여 시위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아니하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계엄군에게 광주재진입작전을 강행하도록 함으로써 다수의 시민을 사망하게 한 사실을 인정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피고인들이 위 계엄군의 시위진압행위를 이용하여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행위는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고, 또한 피고인들에게 방위의사나 피난의사가 있다고 볼 수도 없어 정당행위, 정당방위·과잉방위, 긴급피난·과잉피난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이유모순이라는 피고인 L, M, N의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원심이 무장시위대의 광주교도소습격을 방어한 행위에 대하여는 정당행위에 해당하므로 위 피고인들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 하여 내란죄와 내란목적살인죄로 다스리지 아니하고, 그 이외의 광주시위행위의 진압행위와 광주재진입작전의 수행으로 무장시위대를 사망하게 한 행위에 대하여는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위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위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 하여 내란죄와 내란목적살인죄로 다스린 조처는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가 상이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므로, 이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이유모순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광주교도소의 방어 부분과 관련한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의 점에 대하여
원심은 3공수여단 11대대 병력이 1980. 5. 21.부터 같은 달 23.까지 광주교도소의 방어임무를 수행하던 중 무장 시위대로부터 전후 5차례에 걸쳐 공격을 받았는데, 같은 달 22. 00:40경에는 차량 6대에 분승하여 광주교도소로 접근하여 오는 무장 시위대와 교전하고, 같은 날 09:00경에는 2.5톤 군용트럭에 엘엠지(LMG) 기관총을 탑재한 상태에서 광주교도소 정문 방향으로 접근하면서 총격을 가하여 오는 무장시위대에 응사하는 등 2차례의 교전과정에서 BB, BC, BD를 각 사망하게 한 사실, 당시 광주교도소는 간첩을 포함한 재소자 약 2,700명이 수용된 주요 국가보안시설이었던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첫째로 다수의 재소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광주교도소에 무장한 시위대들이 접근하여 그 곳을 방어하는 계엄군을 공격하는 행위는 불법한 공격행위라 할 것이며, 둘째로 피고인 A, O, Q, C, D, G, H, I, L, M, N이 쿠데타에 의하여 군의 지휘권과 정권을 불법으로 장악하였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불법한 공격을 감행하는 무장 시위대로부터 교도소와 같은 주요 국가보안시설을 방어하기 위하여 계엄군으로 하여금 총격전을 벌여 시위대를 저지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정부 또는 합법적인 정부가 당연히 취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그러한 조치를 수행한 것으로서, 그 범위 내에서는 정당행위라 할 것이므로, 이 부분에 대하여 위 피고인들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고, 또한 내란목적살인죄는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인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인데, 계엄군의 위와 같은 살해행위에 대하여 피고인 A, C, L, M, N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위 피고인들을 내란목적살인죄로 처벌할 수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거나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자위권발동과 관련한 내란목적살인의 점에 대하여
원심은 원심판결 별지(2) 피해자 및 피해상황 일람표의 1, 3, 4, 5, 6, 7, 8 각 항 기재 피해자들에 대한 총격행위의 원인으로 공소장에 적시된 자위권 보유천명 또는 자위권발동 지시에 대하여, 피고인 A는 배후에서 자위권 보유천명의 담화문을 발표하도록 지시·관여한 것으로 인정되나, 나아가 1980. 5. 21. 20:30 이후 육군본부로부터 2군사령부를 거쳐 광주에 있는 계엄군에게 이첩·하달된 자위권발동 지시를 내용으로 하는 전통을 발령하거나 그 다음날인 5. 22. 12:00 자위권발동 지시라는 제목으로 된 계엄훈령 제11호를 하달함에 있어 이에 관여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피고인 N은 자위권 보유천명이나 자위권발동 결정에 관여하였다는 사실조차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며, 가사 피고인 A, C, L, M, N이 자위권 보유천명이나 자위권발동 지시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시위진압의 효과를 조속히 올리기 위하여 '무장시위대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발포하여도 좋다'고 하는 이른바 '발포명령'이 위 피고인들의 지시에 의하여 육군본부로부터 광주의 계엄군에게 하달되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위 피해자들의 사망은 계엄군이 위 피고인들 기타의 상급자로부터 하달된 포괄적인 발포명령을 집행하여 총격행위에 나감으로써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더구나 피고인 A, C, L, M, N이 위에 나온 개개의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살인행위를 용인하면서 이를 국헌문란목적 달성을 위한 직접적인 수단으로 삼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에서 일어난 살인행위들은 그 전후의 경위에 비추어 볼 때, 폭동행위로 인정된 일련의 시위진압행위와 분리된 상황에서 그와 무관하게 실행된 것으로 볼 수도 없으며, 결국 위의 살해행위 등은 이 사건 내란을 실행하는 폭동의 와중에서 폭동행위에 수반하여 발생한 것으로서, 위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는 계엄군을 도구로 이용하여 실행한 내란행위의 하나를 구성하는 것이므로, 위 피고인들에 대한 내란죄에 흡수시켜 내란목적살인죄의 별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위 피고인들에 대한 이 부분 내란목적살인의 점은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 판단유탈 또는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 반란의 점에 대하여
(1) 원심은 피고인 A, O, C, D, G, H, I, L, M, N에 대한 이 사건 반란의 공소사실 중, 위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1980. 5. 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전후하여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하여 학생, 정치인, 재야인사 등을 체포하고, 1980. 5. 17. 저녁 무렵부터 5. 18. 새벽까지 전국의 주요 보안목표에 무장한 계엄군을 배치하고, 1980. 5. 18. 07:20경 피고인 O가 BE 당시 BV당총재의 가택에 소총 등을 휴대한 수경사의 헌병들을 배치하여 포위, 봉쇄하고, 광주에서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5. 18.경부터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증파하여 시위를 진압하고 광주시 외곽을 봉쇄한 후 광주재진입작전을 실시하여 도청 등을 점령한 사실에 대하여는,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육군참모총장에 이르는, 또는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장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에 이르는 군의 지휘통수계통을 따라 사전에 결재과정을 거쳐 작성된 명령에 의하여 혹은 사전 사후에 구두로 보고하여 승인을 받은 조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위 각 행위는 대통령의 군통수권 또는 국방부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 등의 지휘권에 반항하는 행위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위 피고인들에 대한 위 반란의 점은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군형법상 반란죄는 군인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군 지휘계통이나 국가기관에 반항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고, 군 지휘계통에 대한 반란은 위로는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최말단의 군인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연결되어 기능하여야 하는 군의 지휘통수계통에서 군의 일부가 이탈하여 지휘통수권에 반항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할 것인데, 기록에 의하면, 위에서 본 행위들은 모두 당시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 하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군의 지휘계통인 국방부장관인 피고인 주영복과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피고인 이희성이 이 사건 내란과 반란에 참여하였다 하더라도, 위 피고인들의 위 각 행위는 반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한 원심판결의 이유설시에 적절하지 아니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위 각 행위가 반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거나 반란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이용훈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4.의 나. 참조).
(2) 원심은 피고인 L, M에 대한 이 사건 반란의 공소사실 중, 위 피고인들이 피고인 A, O, Q, C, D, G, H, N과 공모하여, 1980. 5. 17. 저녁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임시국무회의장에 소총 등으로 무장한 수경사의 병력을 배치하고, 1980. 5. 18. 01:45경부터 무장한 제33사단 병력을 계엄군으로 국회의사당에 배치하여 이를 점거하면서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같은 달 20.경 일부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저지한 사실에 대하여는, 이에 부합하는 증거를 배척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고인 L, M에 대한 위 각 반란의 점은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거나 반란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이용훈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4.의 나. 참조).
라. 불법진퇴의 점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 O가 피고인 A와 공모하여, 1980. 5. 17. 저녁 국무회의장에 휘하의 병력을 대통령, 대통령 경호실장 또는 국방부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의 승인 없이 배치한 행위에 대하여, 이는 군사반란죄를 구성하고 불법한 병력의 진퇴는 그 반란을 실행하기 위하여 한 행위이므로 따로 불법진퇴의 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고 반란죄에 흡수된다고 판단하였다.
불법진퇴죄가 군사반란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행하여진 경우에 그 불법진퇴죄가 반란죄에 흡수된다고 함은 앞서 판단한 바와 같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불법진퇴죄와 반란죄의 관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이용훈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4.의 가. 참조).
제4장 뇌물 사건 부분
1. 피고인 N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원심이 위 피고인의 뇌물수수방조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조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거나 뇌물죄 및 뇌물방조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인 A에 대하여
원심은 위 피고인이 1987. 10.경 당시의 국가안전기획부장 BF 및 국세청장 BG와 공모하여 위 BG로 하여금 국세청장의 직무에 관하여 BH 등 중견기업경영인 11인으로부터 합계 금 5,450,000,000원을 교부받게 함으로써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위 BF와 BG가 공모하여 위 BG의 직무에 관하여 위와 같이 뇌물을 수수한 점은 인정되나, 위 피고인이 위 BF 등과 공모하였다거나 위 범행에 관여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거나 공동정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피고인 O에 대하여
(1) BI와 관련한 부분
원심은 위 피고인이 1988. 12. 말경 BJ그룹의 회장 BI로부터 금 3,000,000,000원을 교부받아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위 피고인과 BI의 관계, 돈을 주고받은 일시, 장소, 경위, 전후의 상황 등 을 종합하여 볼 때, 위 피고인이 직무의 대가인 뇌물로 위 금원을 수수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거나 뇌물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BK와 관련한 부분
원심은 위 피고인이 1991. 9. 중순경 및 같은 해 12. 중순경 주식회사 BL의 회장 BK로부터 각 금 5,000,000,000원씩을 교부받아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그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반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추징 부분
형법 제134조에 의하면 범인 또는 정을 아는 제3자가 받은 뇌물은 필요적으로 몰수, 추징하도록 되어 있는바, 그 규정취지가 범인 또는 정을 아는 제3자로 하여금 불법한 이득을 보유시키지 아니하려는 데에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범인이라 하더라도 불법한 이득을 보유하지 아니한 자라면 그로부터 뇌물을 몰수, 추징할 수 없으므로, 제3자 뇌물수수의 경우에는 범인인 공무원이 제3자로부터 그 뇌물을 건네받아 보유한 때를 제외하고는, 그 공무원으로부터 뇌물의 가액을 추징할 수 없다 고 할 것이다.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아도, 피고인 O가 BM 주식회사 회장 BN이 BO 총무원장 BP에게 공여한 뇌물 금 8,000,000,000원을 위 BP로부터 건네받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위 피고인으로부터 위 뇌물의 가액을 추징하지 아니한 원심의 조처는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필요적 몰수, 추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유탈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제5장 피고인 Q 부분
의사 BQ 작성의 사체검안서와 호적등본의 기재에 의하면, 위 피고인은 1997. 4. 3. 사망하였음이 분명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82조, 제328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위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하기로 한다.
제6장 결 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심판결에 채증법칙 위반, 심리미진, 법리오해, 판단유탈, 이유모순 등의 위법이 있다는 각 상고이유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피고인 C, D, E, F, G, H, I, J, K, L, M, N의 각 상고와 검사의 피고인 A, O, C, D, P, G, H, I, L, M, N에 대한 각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피고인 E, F의 상고 후 구금일수 중 일부씩을 각 본형에 산입하며, 피고인 Q에 대한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하는바, 이 판결에는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의 처벌 여부에 관하여 대법관 박만호의 반대의견이, 5·18특별법의 위헌 여부와 공소시효완성 여부에 관하여 대법관 박만호, 대법관 박준서, 대법관 신성택의 반대의견이, 피고인 P에 대한 판단 부분에 관하여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지창권,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 대법관 송진훈의 반대의견이, 지휘관수소이탈·불법진퇴의 반란죄 흡수 여부와 5·18 관련 반란죄 중 무죄 부분에 관하여 대법관 이용훈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제7장 소수의견
1.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는 대법관 박만호의 반대의견
이 사건에서 군형법 및 형법 위반의 죄로 각 공소가 제기된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에 관련된 피고인들에 대하여는 법원이 그 가벌성 여부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고 생각되므로, 이와 반대의 견해를 전제로 한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찬동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에 의하여 군권 및 정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피고인 A가 1980. 9. 1.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 1980. 9. 29. 구 정치질서로부터 결별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정당을 해산하고 국회를 새로 구성하며 대통령도 새로 선출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의 전문 개정안을 제안하여, 그 개정안이 국민투표를 거쳐 제5공화국의 헌법으로 확정되고 1980. 10. 27. 대통령이 이를 공포함으로써 그 날부터 발효하게 된 사실, 제5공화국 헌법에 따른 절차에 의하여 피고인 A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1. 3. 3. 그 직에 취임하고, 그 직후 실시된 국회의원선거에서 피고인 등이 주도하여 창당한 정당이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이래, 그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통치권의 중추를 담당하여 국정을 운영하여 왔고, 피고인 A는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으며, 다시 국회의 의결과 국민투표를 거쳐 1987. 10. 29. 전문 개정된 현행 헌법에 따른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피고인 O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고, 다른 피고인들도 그 동안 대부분 정부의 각료나 국회의원으로 종사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와 같이 헌법상 통치체제의 권력구조를 변혁하고 대통령, 국회 등 통치권의 중추인 국가기관을 새로 구성하거나 선출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이 국민투표를 거쳐 이루어지고 그 개정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고 국회가 새로 구성되는 등 통치권의 담당자가 교체되었다면, 이는 과거의 헌정질서와는 단절된 제5공화국의 새로운 헌정질서가 출발하였고 국민이 이를 수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할 것인바, 피고인들의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는 국가의 정치적 변혁과정에서 국민이 수용한 새로운 헌정질서를 형성하는 데에 기초가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들의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는 국가의 헌정질서의 변혁을 가져온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할 것인바, 위와 같이 헌정질서 변혁의 기초가 된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또는 그 정치적 행위가 사후에 정당화되었는지 여부의 문제는 국가사회 내에서 정치적 과정을 거쳐 해결되어야 할 정치적·도덕적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그 본래의 성격상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법원이 사법적으로 심사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이고,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현대 법치주의의 원리는 원칙적으로 국가사회 구성원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법원이 그 합법성 여부를 심사할 것을 요청받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행위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원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서는 당해 행위가 가지는 정치적 측면과 법적 측면을 비교하고 그 행위에 대한 규범적 통제의 정도 및 사법제도의 본질적 특성을 감안하여 무엇보다도 그 행위에 대한 사법심사가 국가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사법심사를 자제하여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가 비록 형식적으로는 범죄를 구성한다고 할지라도 그 책임 문제는 국가사회의 평화와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움직이는 국민의 정치적 통합과정을 통하여 해결되어야 하는 고도의 정치문제로서, 이에 대하여는 이미 이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여러 번에 걸친 국민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형성되어 온 마당에 이제 와서 법원이 새삼 사법심사의 일환으로 그 죄책 여부를 가리기에는 적합하지 아니한 문제라 할 것이므로, 법원으로서는 이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에 관련된 피고인들에 대한 각 해당 공소사실에 대하여 실체관계에 나아가 유죄 또는 무죄의 판단을 한 원심판결은 잘못이라고 할 것이므로, 원심판결 중 이 부분을 파기하고, 이에 대하여는 재판권이 없음을 이유로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하여야 할 것이다.
2. 5·18특별법의 위헌 여부 및 공소시효완성 여부에 관한 대법관 박만호, 대법관 박준서, 대법관 신성택의 반대의견
가. 대법관 박만호, 대법관 신성택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 C, D, P, E, F, G, H, I, J, K, L, M, N에 대한 1979. 12. 12. 및 1980. 5. 18.을 전후한 각 군사반란에 관한 범죄 및 피고인 A, C, L, M, N에 대한 각 내란목적살인죄에 대하여는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하 5·18특별법이라고만 한다) 제2조가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되므로, 이와 견해를 달리하는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찬동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공소시효란 국가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의 형사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이다. 공소시효의 존재이유에 관하여는 학설상 견해가 나누어져 있으나, 범죄가 발생한 후 일정한 시간을 경과하면 범죄혐의자에 대한 일반인의 처벌욕구가 감소하게 되고 범죄의 사회적 영향력도 약화되며, 범죄혐의자는 오랫동안 양심의 가책을 받고 범행에 대한 후회나 처벌에 대한 불안 등으로 처벌을 받은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 가벌성이 점차 약화된다는 점, 오랜 기간의 경과로 증거가 흩어져 없어짐으로써 공정하고 적정한 재판의 실현이 곤란해지는 점, 국가가 소추권의 행사를 게을리함으로 인한 장기간의 법적 불안정이라는 불이익을 오로지 범죄혐의자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하여 마련한 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제도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에 관계없이, 공소시효는 공소가 제기되지 아니한 채 일정한 기간이 경과함에 따른 사실상의 상태를 유지·존중하여 국가의 형사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이고, 그 당연한 결과로 범죄혐의자에 대하여 법적·사회적 지위의 불안정을 해소시켜 주는 이익을 부여하는 제도임은 분명한 것이다.
(2) 5·18특별법 제2조 제1항은 "1979. 12. 12.과 1980. 5. 18.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소추권 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그 제2항은 "제1항에서 국가의 소추권 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이라 함은 당해 범죄행위의 종료일부터 1993. 2. 24.까지의 기간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① 5·18특별법 제2조의 규정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적용을 위하여는, 먼저 위 법률조항의 공소시효 정지규정이 그 적용대상인 범죄행위 당시의 법률의 해석상 당연히 공소시효 정지사유로 인정되던 것을 명문으로 확인하여 입법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당시의 법률상 공소시효 정지사유로 인정되지 아니하던 것을 그 이후에 소급적으로 규정한 것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위 법률조항의 규정은 행위시의 법률상 인정되던 공소시효 정지사유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소시효 정지사유를 형성적으로 설정한 것으로서 소급효를 갖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공소시효제도는 범죄혐의자에게 법적·사회적 안정이라는 이익을 부여하는 제도이므로, 공소시효의 완성을 방해하는 공소시효 정지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범죄혐의자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사유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에 관한 헌법 제37조 제2항의 정신에 따라 공소시효 정지사유로 인정되는 것은 형사소송법 등에 의하여 명문으로 규정된 것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헌법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국가의 소추권 행사에 법률상의 장애가 있었음이 분명한 경우가 아니면 아니된다고 본다. 5·18특별법 제2조는 그 적용대상범죄에 대하여 국가의 소추권 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을 공소시효 정지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나, 위 법률조항에 규정된 기간의 장애사유가 그 제정 이전부터 헌법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소추권 행사의 법률상 장애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며, 형사법의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상 공소시효제도의 본질 또는 그 존재이유로부터 공소시효 정지사유를 유추해석해 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의 소추권이 장기간 행사되지 못하고 공소시효기간을 경과한 사건에 있어서는 5·18특별법이 인정한 바와 같은 장애사유 이외에도 이런저런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존재할 수 있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임에도, 이와 같은 사실상의 장애사유를 공소시효 정지사유로 법률에 규정한 바가 없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유를 공소시효 정지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던 까닭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5·18특별법이 규정한 바와 같은 장애사유에 대하여 법률의 해석에 의하여 공소시효 정지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② 다음으로 범죄행위가 이루어진 이후에 공소시효를 소급적으로 정지하는 내용의 법률조항이 우리 헌법상 유효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헌법 제12조 제1항 제2문은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그 제13조 제1항 전단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라고 규정하여 죄형법정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 및 소급금지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형법 제1조 제1항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법에 관한 소급금지의 원칙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원칙은 형법과 형사특별법상의 모든 범죄의 성립과 형벌에 관한 내용을 담은 실체법적 규정에 있어서는 엄격히 적용되어 소급효는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공소시효는 바로 범죄의 성립과 형벌에 관한 것은 아니어서 소급금지의 원칙이 당연히 적용되는 영역에 해당하지는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공소시효제도는 범죄혐의자의 법적 안정성에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서 그 규정과 적용 여하에 따라 범죄혐의자의 실체법적 지위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공소시효에 관한 법률규정은 헌법 제12조 제1항의 적법절차의 원칙과 제13조 제1항의 소급금지의 원칙에 관한 헌법의 정신을 벗어나거나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소시효를 사후에 소급적으로 정지하는 내용의 법률조항의 효력은 그 적용대상이 되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그 법률 시행 이전에 이미 완성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범죄혐의자의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정도가 달라지므로 경우를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범죄에 대하여 사후에 공소시효를 소급적으로 정지하는 이른바 부진정소급효의 법률규정은 이미 성립한 범죄에 대하여 소추가 가능한 상태에서 그 소추기간을 연장하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공소시효에 의하여 보호받는 범죄혐의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따라서 5·18특별법이 적용대상으로 삼는 헌정질서파괴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공익의 중대성과 그 범죄혐의자들에 대하여 보호해야 할 법적 이익을 교량할 때 5·18특별법 제2조는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한 다음에 소급적으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이른바 진정소급효를 갖는 법률규정은 이와 달리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법률규정은 형사소추권이 소멸함으로써 이미 법적·사회적 안정성을 부여받아 국가의 형벌권 행사로부터 자유로워진 범죄혐의자에 대하여 실체적인 죄형의 규정을 소급적으로 신설하여 처벌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는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결국 공소시효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 다시 소추할 수 있도록 공소시효를 소급하여 정지하는 내용의 법률은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③ 그러므로 5·18특별법 제2조의 공소시효 정지규정이 적용되는 범위를 해석함에 있어서, 5·18특별법 시행 당시 공소시효 완성 여부에 관계없이 위 법률 조항의 문언에만 근거하여 위 이른바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에 대하여 적용된다고 보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해석방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위 법률조항은 5·18특별법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하지 않은 범죄에 대하여만 한정하여 적용되고,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에 대하여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헌법재판소는 1996. 2. 16. 선고한 96헌가2, 96헌바7, 13(병합) 사건에서 5·18특별법 제2조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면서, 결정 이유에서 위 법률조항은 그 시행일 이전에 위 법률 소정의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도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는 한정위헌의견이 다수 재판관의 견해이기는 하나,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2항 제1호에 정한 위헌결정의 정족수에 이르지 못하여 합헌으로 선고할 수밖에 없음을 설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에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도 위 법률 조항이 합헌이라고 한 결정 이유 중의 판단내용에 기속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합헌으로 선고된 법률 조항의 의미·내용과 적용범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정하는 권한 곧 법령의 해석·적용의 권한은 바로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다( 대법원 1996. 4. 9. 선고 95누11405 판결 참조). 법원이 어떠한 법률 조항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한 가지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고 다른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합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위헌적인 해석을 피하고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방법을 택하여야 하는 것임은 또 하나의 헌법수호기관인 법원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대법원 1992. 5. 8.자 91부8 결정 참조).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에 불구하고 5·18특별법 제2조를 위와 같이 해석·적용함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
(3) 피고인 C, D, P, E, F, G, H, I, J, K에 대한 1979. 12. 12.을 전후한 군사반란사건에 관련한 공소 범죄행위는 1979. 12. 13.에, 피고인 C, D, G, H, I, L, M, N에 대한 1980. 5. 18.을 전후한 군사반란사건에 관련한 공소 범죄행위 및 피고인 A, C, L, M, N에 대한 각 내란목적살인죄의 공소 범죄행위는 모두 1980. 5. 27.까지 각 종료하였음은 기록상 분명하므로 위 각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는 각 그 종료일로부터 진행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때로부터 5·18특별법이 시행된 1995. 12. 21. 이전에 15년의 공소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하였음이 분명하므로, 위의 각 범죄에 대하여는 위 법률 시행 이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피고인 A, O에 대한 각 군사반란에 관한 범죄행위에 대하여는 헌법 제84조에 의한 공소시효 정지사유가 있고, 위 각 군사반란에 관련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피고인 A, O와 공범관계에 있으므로, 위의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하여도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에 의하여 공소시효 정지의 효력이 있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 헌법 규정은 국가의 소추권 행사에 대한 법률상의 장애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달리 대통령의 재직 중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는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 헌법 규정의 취지상 대통령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없는 범죄에 한하여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볼 수 있고, 피고인 A는 1980. 9. 1.부터 1988. 2. 24.까지 7년 5월 24일간, 피고인 O는 1988. 2. 25.부터 1993. 2. 24.까지 5년간 각 대통령직에 있었던 관계로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은 "공범의 1인에 대한 전항의 시효정지는 다른 공범자에게 대하여 효력이 미친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1항은 그 시효정지의 사유를 '공소의 제기'로만 한정하여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헌법 제84조에 의한 대통령의 신분으로 인하여 공범의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하여 그것이 다른 공범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에 정한 공소시효 정지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4) 결국 피고인 C, D, P, E, F, G, H, I, J, K, L, M, N에 대한 1979. 12. 12. 및 1980. 5. 18.을 전후한 각 군사반란에 관한 범죄 및 피고인 A, C, L, M, N에 대한 각 내란목적살인죄에 대하여는 5·18특별법 시행 당시에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므로 5·18특별법 제2조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 피고인들에 대한 각 해당 공소사실에 대하여 실체관계에 나아가 유죄 또는 무죄의 판단을 한 원심판결은 잘못이므로, 공소시효에 관한 피고인들의 상고이유을 받아들이거나 또는 직권으로 위의 피고인들에 대한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위 각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3호에 의하여 면소의 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이와 반대의 견해를 취한 다수의견은 수긍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 대법관 박준서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대법관 박만호, 대법관 신성택의 위 반대의견 중 헌법재판소의 합헌 또는 위헌결정에 관련된 법원의 법령 해석방법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다른 의견을 표명하는 점 외에는 모두 같은 견해이다.
법원은 헌법수호기관으로서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령을 적용함에 있어서 그 법령을 헌법의 명문 규정과 그 지도이념에 따라 합헌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법률의 경우에는 그 내용이 헌법에 위반되더라도 법원이 곧바로 그 적용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헌법 제107조 제1항에 의하여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하여야 하는바, 이 경우 헌법재판소의 결정 중 각종 위헌결정은 헌법재판소법 제47조에 의하여 법원을 기속하게 되나, 합헌결정은 그 법률을 재판에 적용할 수 있다는 효력이 있을 뿐이므로, 그 법률을 적용함에 있어서 합헌적으로 해석할 책무는 여전히 법원에 남아 있는 것이다 .
이와 같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 법률에 의하여 침해될 위험성은 헌법재판소의 각종 위헌결정과 법원의 합헌적 법령의 해석작용에 의하여 제거되는 것이고, 특히 법률의 위헌적 해석의 위험성은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과 법원의 합헌적 법률해석에 의하여 이중의 안전장치로 차단되는 것이다( 대법원 1996. 12. 10. 선고 96누4022 판결 참조).
그런데 헌법재판소 1996. 2. 16. 선고 96헌가2, 96헌바7, 13(병합) 결정은 5·18특별법 제2조가 합헌이라는 것이어서 법원이 위 법률 조항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위 법률을 어떻게 해석·적용하는 것이 합헌적이냐 하는 문제는 별개의 과제로서 원래부터 법원에 부여된 책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결국 위 법률 조항의 해석에 관하여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을 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법원에게는 그 법률 조항을 합헌적으로 해석할 의무가 여전히 있는 것이고, 공소시효에 관한 위 법률 조항은 위 반대의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만 적용된다고 해석함이 합헌적이므로, 법원은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합헌적 해석을 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물론 위 법률 조항이 그 시행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자에 대하여도 이를 적용한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면, 헌법재판소가 위 법률 조항에 대하여 합헌결정을 한 이상, 법원으로서는 그 문언에 따라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나, 그 문언의 의미가 불명확하거나 다의적이어서 그 해석방법에 따라 위헌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의하여 한정위헌결정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법원이 그 적용단계에서 합헌적 해석방법을 택함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3. 피고인 P에 대한 판단 부분에 관한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지창권,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 대법관 송진훈의 반대의견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지창권,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 대법관 송진훈은 다수의견의 피고인 P에 대한 판단부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찬성할 수 없다.
가. 피고인 P에 대한 공소사실과 원심판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원심에서 변경되었고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피고인 P는 이 사건 공동피고인들과 함께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S 총장을 내란방조 혐의로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강제 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하기로 결의하는 등 공모하여, 1979. 12. 12. 18:00경부터 19:00경까지 사이에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고, 같은 날 20:30경 제20사단 참모장 BR로부터 '진도개 하나' 비상이 발령된 사실과 W 육군참모차장, AG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등이 자신을 급히 찾고 있다는 사실을 전화로 보고 받고 그들이 육군본부 기동예비부대인 제20사단 병력을 동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부대로 복귀하지 않은 채 위 제30경비단장실에 계속 머무르던 중 같은 날 20:40경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AYBS학교장을 통하여 제20사단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10여 분 간격으로 위 BR을 비롯하여 제20사단의 인사참모, 정보참모, 작전참모, 군수참모, 비서실상, 제61연대장, 제62연대장 등에게 수회 전화를 걸어 부대장악을 철저히 하고 자신의 육성지시 없이는 병력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여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제20사단 부대 장악을 저지·방해함으로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것이다.
(2) 이에 대한 원심판결 이유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피고인 P가 S 총장의 연행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것임을 미리 알고 제30경비단에 갔는지에 관하여는 이 점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고, 피고인 P도 제30경비단에서 반란지휘부를 구성한 한 사람으로서 만약의 경우에 병력을 동원하여 지원하기로 하였다는 취지의 원심 제18회 공판조서 중 증인 AW의 진술기재, 검사 작성의 D와 AW에 대한 각 진술조서 및 피고인 D에 대한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는 뒤에서 인정하는 사정 등에 비추어 믿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거시의 각 증거에 의하면 육군 정식지휘계통이 제20사단을 적극적으로 장악하여 그 동원을 해보려고 시도해 본 일이 없고 다만 합동수사본부 측을 위하여 제20사단이 동원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였음에 불과한 점, 제20사단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피고인 P의 조치는 육군본부의 제20사단에 대한 출동금지지시와 오히려 일치한 점, 피고인 P가 피고인 A로부터 병력동원 요청을 받았으나 그 요청을 거절하였고, 적어도 불암산의 제62연대는 언제라도 합동수사본부 측을 위하여 동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원하지 아니한 점, 제30경비단에 모인 피고인들이 육군본부 측에 가까운 지휘관들에게 병력동원을 자제하도록 요청하였음에도 피고인 P는 제30경비단에 남아 있으면서도 그러한 일을 한 바 없는 등 합동수사본부 측을 위하여 뚜렷하게 기여한 바가 없었고, 위 피고인들이 제30경비단에서 보안사령부로 이동할 때에도 피고인 P는 뒤늦게 혼자서 가는 등 다른 피고인들과 일치된 행동을 하지 아니한 점 등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피고인 P가 12. 12. 저녁에 제30경비단의 모임에 참석하고 부대에 복귀하지 아니한 채 제20사단의 참모들에게 부대를 잘 장악하고 자신의 육성지시 없이는 부대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다고 하여, 이를 가지고 바로 피고인 P가 제30경비단에서 반란지휘부에 참여하고 반란의 범의를 가지고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제20사단 부대장악을 저지·방해함으로써 반란에 가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 사건에서 채용된 증거를 종합하여도 피고인 P가 반란지휘부의 일원이 되어 반란에 가담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피고인 P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
나. 다수의견은 원심의 이러한 판단을 정당하다고 보고 있으나, 이 점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찬성할 수 없다.
(1) 먼저 이 사건에서 채용된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 A는 1979. 12. 7. 피고인 O와 함께 모의하여 S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날짜를 같은 달 12.로 정한 사실, 피고인 P는 같은 달 8.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피고인 A의 부관으로부터 같은 달 9. 서울 서대문구 BT에 있는 피고인 A의 집으로 와달라는 전화연락을 받고, 같은 날 10:00경 피고인 A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이 때 피고인 A는 피고인 P에게 같은 달 12. 저녁에 만나자고 하면서 시간과 장소는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한 사실, 피고인 P는 같은 날 09:30경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피고인 G의 전화연락을 받고 그에 따라 피고인 P가 사단장으로 있는 제20사단의 참모장 등에게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부대를 떠나 군복을 입고 권총을 휴대한 채 같은 날 18:30경 제30경비단장실에 도착한 사실, 제30경비단장인 피고인 F는 자신의 사무실에 모인 피고인 O, Q, C, D, P, E 및 공소외 AP, AS 등에게 같은 날 19:00경 피고인 A가 S 총장의 체포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러 국무총리공관에 가 있고 피고인 H 등이 S 총장을 체포하기 위하여 병력을 이끌고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이어서 같은 날 19:50경에는 S 총장의 체포과정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S 총장을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하였다고 알려 준 사실, 같은 날 20:30경부터 21:00경 사이에 피고인 A가 대통령으로부터 S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받지 못하고 제30경비단장실에 돌아와서 그 곳에 모여 있는 위 피고인 등에게 S 총장 체포의 구체적인 경위 등 그 동안의 상황을 설명한 사실, 그 무렵 W 육군참모차장 등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서는 제30경비단장실에 모여 있는 피고인 등에게 S 총장의 석방을 명령하였으나 피고인 등이 이에 응하지 않자 피고인 등을 진압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사실, 한편 제3공수여단장인 피고인 E와 제5공수여단장인 공소외 AS는 부대를 장악하기 위하여 각자의 소속 부대로 출발하였으며, 피고인 O, Q, C 등은 W 차장이나 피고인 등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부대의 지휘관, 참모 등에게 전화를 하여 병력출동을 자제하라고 부탁하거나 회유한 사실, 그 동안 피고인 P도 피고인 등과 함께 제30경비단장실에 있었고, 같은 날 21:30경 피고인 A, Q, C, D 등이 대통령에게 S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다시 요구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공관에 간 후에도 피고인 P는 피고인 O, F 등과 함께 제30경비단장실에 남아 있었으며,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하고 돌아온 피고인 Q, C, D 등이 같은 날 24:00경 제30경비단의 통신이 두절되자 통신 유지가 되는 길 건너편의 국군보안사령부로 이동한 후에도 역시 피고인 P는 피고인 O, F 등과 함께 계속하여 제30경비단장실에 머무르다가 12. 13. 02:00경 도보로 국군보안사령부로 이동하여 보안사령관 비서실에서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대기하다가 피고인 A, O 등이 지시하여 동원된 병력이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을 제압하고 국방부, 육군본부 등 서울의 주요 지점을 점령하자 같은 날 05:30경 제20사단으로 출발한 사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피고인 P는 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피고인 등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1979. 12. 12. 20:30경 제20사단 참모장 BR에게 전화를 걸어 '진도개 하나' 비상이 발령되고 W 차장과 AG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부대에 복귀하지 아니하고 그 무렵부터 같은 날 24:00경까지 사이에 약 10분 내지 15분 간격으로 위 참모장을 비롯하여 제20사단의 인사참모, 정보참모, 작전참모, 군수참모, 비서실장 등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부대상황을 알아보는 한편 자신의 육성명령 없이는 부대를 출동하지 말라는 지시를 반복한 사실, 그 후 1979. 12. 14. 저녁 국군보안사령관실 옆 접견실에서 피고인 O, Q, C, D, E 및 P 등이 함께 모여서 좌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이번에 가담한 사람끼리 친목회를 만들어 사선을 넘은 각오를 잊지 말고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12. 12. 밤의 사건 및 각자의 언동 등을 다각적으로 남기자는 취지의 말이 오가고 군의 후속 인사까지 논의한 사실 등이 인정되는데, 이는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P는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 제30경비단에 도착하기 전은 물론 그 곳이나 국군보안사령부에서 다른 피고인 등과 함께 있는 동안 반란의 범의는 없었고 병력동원 상황에 대하여도 잘 알지 못하였으며 단지 육군본부 측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부대에 돌아갈 수 없었고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군인으로서 집이나 다른 장소로 피할 수도 없었을 뿐이라는 등의 변소를 하고 있다.
(3) 그러나 위에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 A, O가 S 총장의 연행 날짜를 정하고 피고인 등과 접촉한 때로부터 피고인 등이 제30경비단에 모여서 이 사건 반란의 지휘부로 기능하고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을 제압하고 서울의 주요 지점을 점령함으로써 위 반란이 종료할 때까지 뿐만 아니라 위 반란이 성공한 후 피고인 등이 군의 후속 인사 등을 논의하는 좌담회를 할 때까지, 피고인 P도 시종 일관하여 다른 피고인들과 행동을 같이 하였다는 것이므로, 피고인 P가 이 사건 반란에 가담할 의사가 있었다는 점은 이 사실로 충분히 인정된다.
원래 집단적 범죄에 있어서 범행에 공동가공하여 범행을 실현시킬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그 범행 당시 외부로 표출된 피고인의 행동과 그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에 의하여 판별되는 것이지, 그 인정 여부가 피고인의 구차한 변소에 좌우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다수의견도 피고인 C, D, E, F, H, I에 대한 반란의 공동의사가 없었다는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 반란의 의사는 외부에 표출된 피고인들의 이 사건 당시의 행동을 근거로 하여 반란의 모의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1979. 12. 12. 당시 제30경비단장실에서 모인 피고인들 중 피고인 P와 똑같이 반란가담의사를 부인하고 있는 피고인 C, D 등에 대하여는 그들의 변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란의 범의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피고인 P에 대하여서만은 그 내심의 의사에 관한 일방적 변소를 받아들여 반란에 가담할 의사가 없었다고 본 것은 온당치 못하다.
(4) 그 밖에도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A는 검찰에서 여러 장군들을 제30경비단에 모이게 하기 이전에도 그들과 여러 번 만나 S 총장의 연행·조사의 당위성을 설명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고(검사 작성의 피고인 A에 대한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 피고인 D는 검찰에서 피고인 A가 제30경비단장실에서 여러 장군들이 있는 자리에서 S 총장의 연행 경위 등을 설명하자 거기에 모인 장군들이 만약의 경우 병력을 동원해 주기로 다짐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며(검사 작성의 피고인 D에 대한 진술조서 및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 피고인 O는 검찰 및 제1심에서 1979. 12. 12. 21:00경부터 육군본부의 수뇌부와 X 수경사령관 등이 S 총장의 원상복귀를 요구하면서 이에 불응할 경우 피고인 등을 진압할 뜻을 표명하는 등 강력한 대응조치의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피고인 등은 상대방에 비하여 월등하게 우세한 병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대항 의지를 약하게 함으로써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병력을 동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제30경비단장실에 함께 있던 피고인 E와 공소외 AP가 부대를 장악하기 위하여 소속 부대로 출발하였지만, 피고인 P는 육군본부에서 체포명령이 하달되었고 육군본부 감찰관 BU가 피고인 P를 체포하기 위하여 제20사단 본부에 와 있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부대에 복귀시키지 못하였으며, 피고인 A, C, D 등이 같은 날 21:30경 국무총리 공관에 간 후 제30경비단에 남아 있던 피고인 O, P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는바(검사 작성의 피고인 O에 대한 제3회 및 제5회 피의자신문조서, 제1심 제1회 공판기일조서), 위 진술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인 P의 변소는 믿을 바가 못되는 것이다.
(5) 그리고 피고인 P의 반란가담의사가 없었다는 변소를 받아들이기 위한 원심의 사실인정은 역시 기록에 비추어보면 사실과 다르거나 그 평가를 잘못한 것임이 분명하다.
첫째로, 원심은 피고인 P가 제20사단을 언제라도 합동수사본부 측을 위하여 동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원하지 아니하고 피고인 A의 동원요청을 거절하였다는 점을 피고인 P에게 반란에 가담할 의사를 인정하기 어렵게 하는 사유 중의 하나로 들고 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P는 1979. 8. 1. 소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제20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하여 근무하기 시작한 사실, 제20사단은 1979. 10. 27.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부터 육군본부 기동예비임무를 부여받고 원래의 주둔지를 떠나 서울에서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육군본부에서 대응조치를 취하는 데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사단본부와 그 예하의 제61연대가 성남시 소재 BS학교 구내 문무대에, 제62연대가 서울 상계동 소재 불암산 예비군훈련장에 각 진주하여 3,000여 명의 병력이 육군본부의 작전통제를 받고 있었으며, 그 병력 및 차량 100여 대가 영내에 대기하며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사실, 1979. 12. 12. 20:10경 육군참모차장 W는 S 총장이 납치된 것으로 판단하고 '진도개 하나' 비상을 발령하고, 같은 날 20:30경 위 W 차장과 AG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은 만약의 사태에 가장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제20사단의 사단장인 피고인 P를 찾고 있다가 같은 날 20:40경 피고인 P가 S 총장을 체포한 합동수사본부 측에 가담하였다는 첩보를 받은 다음에는 제20사단이 합동수사본부 측에 의하여 동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BS학교장 육군소장 AY에게 제20사단 본부에 가서 병력출동을 저지하고 부대를 장악하고 피고인 P가 나타나면 체포하라고 지시한 사실, 그 지시를 받은 위 AY는 제20사단 참모장과 제62연대장에게 전화하여 부대를 출동시키지 말 것을 지시한 사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AG도 제20사단의 참모장과 제62연대장에게 육군본부의 명령 없이는 부대를 출동시키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 또한 W 차장으로부터 제20사단에 가서 부대상태·가용 여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은 BU 육군본부 감찰관이 같은 날 21:30경 제20사단 본부에 도착하고 위 AY도 그 무렵 도착하여 같은 날 23:00경까지 사단장실에 머물고 있었던 사실, 위 AY는 종합행정학교로 돌아가면서 참모장에게 사단장이 돌아오면 연금하고 자기에게 연락하도록 지시한 사실, 한편 피고인 P는 제20사단의 인사참모 등으로부터 위 AY가 피고인 P를 체포하기 위하여 사단 본부에 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 등이 인정된다. 위와 같은 상황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P가 제30경비단장실에서 참모장이나 제62연대장에게 전화로 지시하여 제20사단을 출동시킬 수는 없었다고 보이므로, 피고인 P가 언제든지 불암산의 제62연대 등 제20사단의 병력을 합동수사본부 측을 위하여 동원할 수 있었음에도 동원하지 아니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A가 1979. 12. 12. 저녁에 제30경비단장실에서 피고인 P에게 제20사단을 동원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을 때 피고인 P가 제20사단의 본부에 위 BU, AY가 와서 부대를 장악하고 있어서 어렵다고 답변한 사실은 인정되나, 위에서 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P의 위와 같은 답변은 당시 합동수사본부 측을 위하여 제20사단을 동원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보이고, 이 사건 반란에 가담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병력동원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명을 병력동원요청거절의 의사표시로 본 원심의 판단은 당시의 상황을 전혀 사실과 달리 잘못 판단한 것임이 분명하다.
둘째로, 원심은 또한 피고인 P가 제30경비단에 있으면서도 합동수사본부 측을 위하여 뚜렷하게 기여한 바가 없었다는 점도 피고인 P에게 이 사건 반란에 가담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게 하는 사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병력의 주둔지·규모 및 그 준비상태로 볼 때,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반란 등 비상사태에 대하여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가장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제20사단의 사단장인 피고인 P가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이나 그의 지시를 받고 부대를 장악하기 위하여 제20사단 본부에 와 있는 위 AY 및 BU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제30경비단에 모인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제20사단의 참모 등에게 계속 전화를 하여 자신의 육성명령 없는 부대출동 금지의 지시를 반복한 행위는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으로 하여금 제20사단의 병력동원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이 사건 반란에 대한 신속한 대응조치를 차단하는 한편, 나머지 피고인들이 안심하고 반란을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해준 것으로서 이 사건 반란을 위하여 기여하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채용된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 P가 제30경비단 모임에 참석한 후 이 사건 반란에 가담할 범의를 가지고 위 반란의 모의에 참여하였거나 중요임무에 종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 P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한 위법이 있다할 것이고,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함이 마땅하다고 하겠다.
4. 지휘관수소이탈·불법진퇴의 반란죄 흡수 여부와 5·18 관련 반란죄 중 무죄 부분에 관한 대법관 이용훈의 반대의견
피고인 A, O, C, D, G, H, I, L, M, N(이하 피고인들이라고 한다)에 대한 다수의견의 판단 일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찬성하지 아니한다.
가. 먼저 피고인 A, O에 대한 세칭 12·12군사반란 등 사건 중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 및 불법진퇴죄의 무죄 부분, 피고인 O에 대한 세칭 5·18내란 등 사건 중 불법진퇴죄의 무죄 부분(이상 검사 상고 부분)과 관련하여, 군사반란에 수반하여 범한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이나 불법진퇴가 반란죄에 흡수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다수의견은, 피고인 A, O가 지휘관 AQ로 하여금 제9사단 제29연대, 제30연대 병력을, 지휘관 AR로 하여금 제30사단 제90연대 병력을 인솔하고 그 부대의 주둔지에서 이탈하여 서울지역으로 이동하게 한 것은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 및 불법진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지휘관 AS로 하여금 제5공수여단 병력을, 지휘관 AT로 하여금 제2기갑여단 제16전차대대의 병력을 그 부대의 주둔지에서 서울지역으로 이동하게 한 행위는 불법진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나, 위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및 불법진퇴는 이 사건 반란의 진행과정에서 그에 수반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반란자체를 실행하는 전형적인 행위라고 인정되므로, 반란죄에 흡수되어 별죄를 구성하지 않고, 또한 피고인 O가 피고인 A와 공모하여, 1980. 5. 17. 저녁 국무회의장에 휘하의 병력을 대통령, 대통령 경호실장 또는 국방부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의 승인 없이 배치한 행위는 군사반란죄를 구성하고, 불법한 병력의 진퇴는 그 반란을 실행하기 위하여 한 행위이므로 따로 불법진퇴의 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고 반란죄에 흡수된다는 이유로, 피고인 A, O의 위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및 불법진퇴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조경합 중 흡수관계의 한 형태로 보고 있는 전형적 또는 불가벌적 수반행위라고 함은, 행위자가 특정한 죄를 범하면 비록 논리 필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전형적으로 다른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이 때 그 구성요건의 불법이나 책임의 내용이 주된 범죄에 비하여 경미하기 때문에 처벌이 별도로 고려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형적 수반행위가 주된 범죄에 흡수된다는 법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전형적 수반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래 가벌적인 행위의 불법 및 책임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수반행위가 주된 범죄에 흡수된다고 보려면 적어도 수반행위의 불법이나 책임의 내용을 주된 범죄의 그것에 함께 포함시켜 평가하여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수반행위의 반가치를 별도로 평가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에 한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란죄에 있어서의 반란이란 다수의 군인이 넓은 의미에서의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국권에 반항하는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 구성요건이므로 반란행위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한편 불법진퇴란 전시·사변 또는 계엄지역에 있어서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 없이 부대를 진퇴시키는 행위를 가리키고,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은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이 부대를 인솔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수소를 이탈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반란이 전시·사변 또는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이 가담한 가운데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거나 전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란에는 일반적·전형적으로 지휘관의 불법진퇴행위나 계엄지역수소이탈행위가 수반된다고 할 수도 없다. 만일 이 사건과 같이 계엄지역에서 부대의 지휘관이 가담하여 일어난 반란의 경우에는 지휘관의 불법진퇴행위나 계엄지역수소이탈행위가 통상적으로 수반된다고 하여 불법진퇴나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이 반란에 흡수된다고 한다면, 이는 범죄행위의 수반성 여부를 일반적·추상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범행 상황을 전제하고서 판단하는 것으로서, 수반행위를 너무 넓게 인정하는 경향으로 치우치게 되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행위의 반가치에 따라 죄책 및 형벌을 개별화하고 있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더욱이 불법진퇴죄는 군의 지휘기강의 질서를, 지휘관수소이탈죄는 군의 수소근무라는 중요한 직무의 기능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국권에 대한 침해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반란죄와는 그 보호법익도 서로 다르다. 그리고 불법진퇴죄의 법정형은 반란죄의 모의참여자·지휘자·기타 중요임무종사자와 마찬가지로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이고,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의 법정형도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인 점을 고려하면, 설사 지휘관의 불법진퇴행위나 계엄지역수소이탈행위는 그것이 반란에 수반되어 오로지 반란의 실행을 위하여 행하여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불법이나 책임의 내용이 반란죄에 흡수하여 평가되어도 무방할 만큼 경미하다고 생각되지 아니한다. 오히려 반란죄에 흡수하여 평가되어서는 아니될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된다.
결국 지휘관의 불법진퇴행위나 계엄지역수소이탈행위는 반란죄에 일반적·전형적으로 수반되는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불법이나 책임 내용을 반란죄에 흡수하여 평가할 수 없는 고유하고도 중대한 반가치가 있는 범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지휘관의 위 불법진퇴행위와 계엄지역수소이탈행위가 반란에 수반되어 그 실행을 위하여 행하여진 것이라고 하여 반란죄에 흡수된다고 볼 수는 없고, 각각 별도의 죄가 성립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나. 나아가서 피고인들에 대한 세칭 5·18내란 등 사건 중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반란죄 부분에 관하여 본다.
다수의견은, 5·18내란사건과 관련한 이 사건 반란의 공소사실 즉, ① 1980. 5. 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전후하여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하여 학생, 정치인, 재야인사 등을 체포한 사실, ② 1980. 5. 17. 저녁 피고인 O가 피고인 A와 공모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임시국무회의장에 소총 등으로 무장한 수경사의 병력을 배치한 사실, ③ 1980. 5. 17. 저녁 무렵부터 5. 18. 새벽까지 전국의 주요 보안목표에 무장한 계엄군을 배치한 사실, ④ 1980. 5. 18. 07:20경 피고인 O가 BE 당시 BV당 총재의 가택에 소총 등을 휴대한 수경사의 헌병들을 배치하여 포위, 봉쇄한 사실, ⑤ 1980. 5. 18. 01:45경부터 무장한 제33사단 병력이 계엄군으로 국회의사당에 배치되어 이를 점거하면서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5. 20.경 일부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저지한 사실, ⑥ 광주에서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1980. 5. 18.경부터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증파하여 시위를 진압하고 광주시 외곽을 봉쇄한 후 광주재진입작전을 실시하여 도청 등을 점령한 사실 중, 원심이 피고인 L, M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의 위 ②, ⑤의 반란사실에 대하여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피고인 L, M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로 판단하였음), 위 ①, ③, ④, ⑥항의 사실에 대하여는 당시 V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어서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피고인 M과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피고인 L이 이 사건 내란과 반란에 참여하였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V의 군통수권에 반항하는 행위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 피고인들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조치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군형법상 반란죄는 군인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군지휘계통이나 국가기관에 반항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고 군지휘계통에 대한 반란은 위로는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최말단의 군인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연결되어 기능하여야 하는 군의 지휘통수계통에서 군의 일부가 이탈하여 지휘통수권에 반항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함은 다수의견이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다. 따라서 피고인들의 위 행위가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는 반란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이지만, 여기의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은 대통령이 정상적인 국정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하는 것이지 대통령 자신이 내란행위를 한 자들에 의하여 정상적인 권능행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내려진 것을 최고통수권자의 승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견이 유지하고 있는 원심판결에 의하더라도, 피고인들은 1979. 12. 12.에 일어난 군사반란 이후 일련의 국헌문란을 위한 모의와 준비과정을 거쳐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 국회, 행정부를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할 것을 공모하여, ① 1980. 5. 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전후하여 수경사 헌병단, 보안사 대공처 소속 수사관 등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하여 학생, 정치인, 재야인사 등 총 2,699명을 체포함으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 하고, ② 1980. 5. 17. 저녁부터 5. 18. 새벽까지 비상국무회의가 열리는 중앙청 내·외부에 수경사 헌병단 소속 장교와 사병 등 무장한 계엄군을 배치하는 등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케 하고, ③ 1980. 5. 17. 저녁 무렵부터 5. 18. 새벽까지 전국 주요 대학과 국회, BV당사 및 공화당사, 언론기관, 공공기관을 포함한 136개 주요 보안목표에 무장한 계엄군 25,000여 명을 배치하는 등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 하고, ④ 1980. 5. 18. 07:20경 수경사 헌병단 소속의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하여 BEBV당 총재를 가택연금시키는 등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 하고, ⑤ 1980. 5. 18. 01:45경부터 33사단 소속의 무장한 계엄군과 장갑차·전차 등을 동원하여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하는 등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을 강압, 외포케 하고, ⑥ 광주에서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1980. 5. 18.경부터 5. 27.경까지 특전사 7공수여단, 11공수여단, 3공수여단 소속 무장군인들을 동원하여 시위하는 시민들을 사살케 하고 다시 20사단의 무장한 병력을 투입하여 시위대원과 민간인을 사살케 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위진압·광주시외곽봉쇄·광주재진입작전 등을 실시하는 등 전국적인 비상계엄 하에서 군이 발휘할 수 있는 무력을 행사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케 하여 폭동한 사실을 인정하고, 내란죄를 적용하여 처단하였다.
다수의견은 피고인들에 의한 위와 같은 일련의 폭동행위는 단일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단순일죄라는 것이므로, 1980. 5. 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시를 전후하여 대통령인 최규하에게 가해진 강압상태는 피고인들에 의한 광주에서의 폭동행위가 종료된 5. 27.경까지 사이에 발생한 위 ① 내지 ⑥의 일련의 폭동행위기간 동안에는 물론 피고인들에 의한 내란행위가 종료한 때, 즉 이 사건 비상계엄이 해제된 1981. 1. 24.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 일련의 폭동행위의 과정에서 행해진 위 ①, ③, ④, ⑥항과 같은 병력의 배치·이동 등에 대하여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피고인들의 내란행위에 의하여 대통령이 적정한 권능행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적법한 승인이라고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다수의견이 유지하고 있는 원심판결과 같이 위 ①, ③, ④, ⑥항과 같은 병력의 배치·이동 등이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이라고 보게 되면, 대통령 최규하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 자신을 강압, 외포하여 폭동하려는 내란행위자들에 대하여 그러한 무력행사를 재가 또는 승인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였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통령 최규하마저도 피고인들과 공모하여 내란죄를 저지른 것이라면 모르되, 오로지 피고인들에 의하여 대통령 최규하의 적법한 권능행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내란죄로 인정하면서도 반란죄에 관한 한 피고인들의 위 일련의 행위에 대통령 최규하의 적법한 재가 또는 승인이 있었다고 한 다수의견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고인들에 의한 위 ①, ③, ④, ⑥항과 같은 병력의 배치·이동 등의 행위는 다수의견도 적절하게 판단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내란을 목적으로 권능행사가 불가능한 대통령을 강압하여 얻은 형식적 승인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는 아무런 법적 효과가 없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의 군통수권에 반항하는 행위로서 반란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하여서도 피고인들에게 반란죄의 죄책을 지워야 할 것임은 당연하다.
그리고 피고인들에 의한 위 ① 내지 ⑥의 일련의 폭동행위를 내란죄의 단순일죄로 보았다면 위 ① 내지 ⑥의 일련의 반란행위 역시 반란죄의 단순일죄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피고인 M, L이 그 중 위 ②, ⑤의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하여 그 부분에 대한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함도 아울러 밝혀둔다.
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 A, O에 대한 세칭 12·12군사반란 등 사건 중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 및 불법진퇴죄의 무죄 부분, 피고인 O에 대한 세칭 5·18내란 등 사건 중 불법진퇴의 무죄 부분, 피고인들에 대한 세칭 5·18내란 등 사건 중 반란죄의 무죄 부분은 파기를 면할 수 없고, 피고인들의 위 무죄 부분은 피고인들의 나머지 유죄 부분과 하나의 형으로써 처단되어야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하여, 이 부분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함이 마땅하다고 하겠다.
대법원장 윤관(재판장) 박만호 최종영 천경송 정귀호(주심) 박준서 이돈희 김형선 지창권 신성택 이용훈 이임수 송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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